유럽의 차도 옆엔 대부분 자전거도로가 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 할 것 없이 자전거를 타며 좌우 방향으로 펼치는 왼팔과 오른팔은 자가용의 방향깜빡이 역할을 한다. 처음엔 참 우습고 이상한 행동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유아와 아동기부터 훈련하여 몸에 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이것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한편 위기 때 힘을 발휘하는, 바로 일상에서 실전처럼 훈련한 결과이다. 매뉴얼대로 평소에 실행훈련하는 것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지름길인 격이다.
대형사고 이후 온 나라가 공공기관 감사에 돌입해 어수선하다. 약속했던 것들을 지키지 않은 결과가 결국 우리 앞에 혹독한 현실로 자리해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난국을 뛰어넘는 다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정부의 안전과 재난구조 시스템은 결국 사소한 일상의 원칙과 연결되어 있다는 대원칙을 이번 사고를 통해 깨닫는다. 또한 이러한 대원칙은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의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시민과의 합의를 통한 원칙을 시민 개개인이 지켜나갈 때 어떤 재난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시스템이 일상의 삶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세상에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최고의 것이 과연 존재할까. 필자에겐 잊지 못할 독일에서의 몇 가지 경험이 있다. 자전거 사고로 넘어진 필자에게 3분도 채 안 돼 응급차가 도착했고, 하늘엔 헬기가 날고 있었다. 동시에 도착한 경찰의 보호자 확인 등 상황점검 후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갈비뼈에 금이 간 진찰 결과를 받아 10일간 입원했다. 가벼운 자전거 사고 하나에도 생명과 안전에 관한 원칙을 철저히 이행하는 시스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인명구조의 일상원칙이 매뉴얼에 따라 실행된 결과로 보였다.
관광버스로 유럽여행 중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경찰차가 관광버스를 세워 운전기록 상황을 불시 점검했다. 장시간 운전자는 운행과 운행 사이에 일정 시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이는 운전자 보호뿐만 아니라 피로로 인해 자칫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이런 법적 장치를 통해 발생 가능한 인재는 미연에 방지 가능하다. 버스는 기본운행시간을 넘는 바람에 고용주에게 연락해 운전자를 교체한 후에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출발 지연에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운전자의 안전은 승객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통규칙과 불시 점검에 대한 약속 이행에 운전자도 승객도 잘 훈련되어 있었다.
차가 없던 유학 시절, 우리 가족은 단지 친구 차에 동승하기 위해 어린이 카시트를 구입해야만 했다. 타인을 동승하는 상황에도 원칙을 고수하는 독일인의 철저한 준법정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어떤 상황에서도 영·유아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영·유아기부터 습관을 들인 탓에 대부분의 아이는 카시트에 잘 적응해있다. 또한 아동의 키가 140㎝가 될 때까진 아동용 카시트를 사용해야 한다. 충돌 시 에어백이 터진다 하더라도 아동용 에어백을 따로 설치하지 않고서는 생명위협은 늘 따른다. 사고 대비를 위해 어린이용 카시트를 법제화한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책임은 운전자가 져야 하기 때문에 모든 운전자는 원칙을 강조하며 승객이나 동승자에게 엄격하다.
교통안전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한 먹거리는 대중식당 위생에 대한 불시 점검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한인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하루는 갑자기 서너 명의 점검원이 주방에 들이닥쳐 음식재료의 보관상태, 신선도, 조리과정, 조리사자격 등을 매뉴얼에 따라 엄격하고도 신속하게 점검했다. 어떤 재료도 땅바닥에 놓여서도 안 되며, 냉동식품의 보관, 유통기한 등 철저한 음식위생 점검을 통해 시민의 건강을 지키는 모습에서 정책 실행을 실감했다. 순식간의 일이어서 어리둥절했지만 점검대상자 어느 누구도 당황하지 않고 일상처럼 차분하게 임했다. 점검과정에 실랑이는 설 자리가 없었다.
이제 우리도 사소한 일상의 원칙을 지켜나감으로써 대원칙을 해결하는 선진국을 거울 삼았으면 한다. 일상의 안전수칙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안전과 재난구조, 일상의 원칙이행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당장의 공공기관 감사와 점검을 우선하기보다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철학으로 하는 국가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을 무기력하게 해서는 안된다.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한 시스템과 매뉴얼, 그리고 당국과 시민의 진정한 이행이 필요하다. 어떤 불시 점검도 일상적인 일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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