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성행하는 한국과 미국, 일본에는 이름은 다르지만 엇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팀이 각각 있다. 롯데 자이언츠와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 미국의 시카고 컵스.

이들 팀의 공통점은 열혈팬을 보유하고 있지만 성적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우승을 해본 지가 다들 오래됐다.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 우승한 해가 1992년이니 벌써 22년이 됐다. 당시가 노태우 정부시절이다보니 인터넷에는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우승을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다. 올시즌 마무리 오승환을 영입한 한신 역시 1985년 일본시리즈에 우승한 뒤 19명의 수상(연임 제외)이 바뀌도록 여전히 우승컵을 들지 못하고 있다.

이들도 '염소의 저주'에 걸려 있는 컵스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민다. 미국 함대가 강화도에 포탄을 쏴댄 신미양요(辛未洋擾)가 발생하기 1년 전인 1870년 창단한 컵스는 1908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105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다. 열혈 메이저리그 마니아들은 컵스를 '순종'이라고 부른다. 조선 순종(純宗) 임금 2년 때 우승하고 아직 못한 것을 비꼬는 말이란다.

이들 팀은 이처럼 철저하게 우승을 '외면'했지만 누구보다 강한 충성심을 가진 팬을 보유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의 슬픈 부산갈매기들은 롯데 이야기만 나오면 욕을 하느라 핏대를 세우지만 저 멀리 날지 못하고 어둠이 지면 다시 사직벌로 모인다. 일본 오사카의 한신팬은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한 2003, 2005년 너무 기쁜 나머지 오사카 시내 도톰보리강을 뛰어내리는 투신 세리머니를 하다 익사사고까지 났다.

컵스 팬들은 월드시리즈를 27번이나 제패한 뉴욕 양키스 팬보다 충성도가 강하다. 지난해 시카고에는 한 노인의 죽음이 화제가 됐다. 컵스의 마지막 우승연도인 1908년 태어난 컵스의 골수팬 리처드 새비지라는 노인이 105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 팬들은 "100년 넘게 리글리필드(컵스 구장)를 드나들었지만 결국 우승을 못 보고 눈을 감았다"고 애도했다.

열혈팬을 이처럼 많이 가진 이들 구단주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 논리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 비정상적이다. 성적(공급)이 좋지 않은데도 계속 팬(수요)이 몰리면 초과수요가 발생한다. 초과수요가 나타나면 시장가격에 맞추기 위해 수요 감소와 공급 증가가 일어나는 게 경제 논리다. 팬들은 야구장을 떠나고 구단은 팬을 잡기 위해 투자를 확대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야구장에서 평범한 이 경제 논리는 쓰레기통에서나 찾아야 한다. 되레, 선수 투자 기피와 팬 서비스 저하 등으로 팬의 반발을 불러왔다.

롯데 자이언츠는 그동안 투자에 인색한 구단으로 낙인찍혔다. 최근 몇 년 새 자유계약선수(FA) 영입 등을 통해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 팬들의 성에는 안 찬다. 올시즌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전광판 설치 등으로 팬심을 유혹하지만 외야 잔디석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광주 기아챔피언스 구장에 더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직구장은 2012년 132만 명에서 지난해 77만 명으로 관중이 40% 이상 감소하더니 올해도 지난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롯데 구단은 창원을 연고로 한 NC 창단과 류현진 추신수 등 메이저리거의 맹활약으로 인한 높아진 눈높이 등을 관중 감소 요인으로 거론하지만 문제의 본질과는 벗어난다. 남녀 간에도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이 결실을 맺으려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팬서비스도 좋고 안락한 경기장도 필요하지만 프로구단의 최고 서비스는 성적이다.

세월호 참사로 잠시 중단 상태지만 6·4 지방선거에 출마한 부산시장 예비후보들은 여야 가릴것 없이 제2구단 또는 시민구단 창단 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명품 도시에는 명문 구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 런던 첼시, 도쿄 요미우리 자이언츠, 바로셀로나 FC 등 명품도시에는 명문 구단이 있다. 이 말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명문 구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이버 공간에는 부산에서 태어나 아직 롯데 우승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젊은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러다가 '부산판 리처드 새비지옹(翁)'이 나올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