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년 전 의료담당 기자 시절 이야기다. 당시 대학병원마다 갑상선결절(갑상선혹) 정밀검사를 위해 환자들이 미어터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를 취재차 만났다. 1차 의료기관에서 갑상선결절 진단을 받고 혹시 갑상선암이 아닌지 불안해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어 왜 그런지 궁금했다. 특정질병이 갑자기 늘어나는 데 대한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 교수는 과잉검진이 환자 급증의 한 원인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왜 갑자기 과잉검진이 많아졌느냐는 질문에 교수는 당시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개업의들에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 분야가 점차 전문화되면서 특정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개업의들이 늘어났고 갑상선 분야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즉 개업의들을 찾는 환자에 대한 갑상선 초음파 검사가 늘어나면서 갑상선결절 진단이 급증했다는 이야기다. 갑상선결절 진단을 받은 환자는 암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결국 대학병원은 정밀진단을 받으려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그 교수의 분석이 옳았는지는 모르지만 6, 7년이 지난 요즘 다시 갑상선암이 뜨거운 논란거리다. 최근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라는 의사단체가 우리나라 갑상선암 발병률이 세계 1위로 세계 평균의 10배가 넘는 것은 병원의 과잉검진 때문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의사연대'의 주장은 한마디로 갑상선암 환자들 중 많은 수는 수술하지 않아도 되며 별다른 증상이 없을 경우 초음파 검사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또 수술로 인해 환자들 중 일부는 불필요한 부작용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련 학회 등에서는 환자 급증이 단순히 과잉진단에 이유가 있다고만 볼 수 없으며 아무리 '착한 암'이라고 하지만 일부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조기검진의 필요성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의사들 간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갑상선암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오래 전부터 의사 개인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제기됐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공식화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갑상선암의 치료를 두고 그간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논란이 된 만큼 관련학회에서는 조만간 조기검진 등의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만든다고 한다. 향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등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이번 파문에 소득이 없진 않다.
하지만 갑상선암 논란의 와중에 한 의사가 지적한 문제는 다시금 우리 의료 현실을 되새겨보게 한다. 갑상선암은 최근 발병률이 급증한 것이 아니라 발견율이 급증한 것이라는 게 그 의사의 주장이다. 즉 각종 전문적인 검진이 늘다보니 종전에는 드러나지 않던 질병이 발견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의료담당 기자 시절 이후 최근까지도 의료학회나 의료기관 등을 통해 특정질병이 크게 늘고 있다는 발표를 어렵지 않게 접해 왔다. 그 때마다 드는 의문은 왜 갑자기 그 질병이 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각종 공해 등으로 찌든 현대사회에서 질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특정질병에 대한 발견율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발견율이 높아지는 건 좋은 일이다. 의료장비가 날로 발전하고 진단기술이 진화하기 때문에 발견율이 높아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달가운 면만 있는 건 아니다. 혹시 치료가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질병까지 과도하게 찾아내 환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든 갑상선암 문제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미 의료계는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됐다. 개업의는 넘쳐나고, 대형병원 또한 실적에 목을 매달고 있다. 이런 의료현실이 검진과 수술을 남발할 수밖에 없고 결국 발견율이 높아지는 기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질병 앞에 강한 사람은 드물다. 갑상선에 난 혹이 만에 하나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하는데 수술 여부의 판단을 과연 환자가 할 수 있을까. 최근의 갑상선암 논란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혹여 날로 심해지는 경쟁에 내몰린 의료계가 이런 심리를 악용해 '불안 마케팅'을 조장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약을 판매하기 위해 불필요한 병을 만들어 낸다는 의혹은 벌써부터 수차례 제기돼 왔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MRI 등 각종 비싼 검사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일부 우리 의료계가 이미 이 같은 '병 주고 약 주기' 관행에 심각하게 물들어 있는 건 아닌지 이번 기회에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차제에 이번 논란이 그간 문제가 돼 왔던 여러 질병에 대한 검진과 치료의 가이드라인을 보다 세분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