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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물건의 옹호 /전성욱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3-23 20:01:1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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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가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속의 삶이란 늘 이런저런 것들의 소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들로 시끄럽다. 실은 그 소유의 욕망이야말로 이 거대한 소비의 체제가 지탱될 수 있는 바탕인 것이니까. 버려야 채울 수 있다는 위대한 역설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다는 그 채움의 물욕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버림과 비움을 통해 자제를 실천하는 빈자(貧者)의 행복이란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경지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무소유라는 궁극의 가르침보다, 제대로 소유하는 것의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비천한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더 절실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왠지 '물건'이라는 말이 참 좋다. 그렇다고 내가 물신주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낭패를 맞은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친구가 편의점으로 뛰어가 사다 준 그 싸구려 우산이 나에겐 아직도 무척이나 아끼는 물건이다. 스승의 날에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 하나가 내게 건넸던 황기찬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또한 그렇게 나를 흐뭇하게 하는 물건이다. 그 시집의 속표지에는 "앞으로도 이처럼 이따금씩 시집을 선물할 수 있는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물건들에는 이처럼 모두 어떤 아련한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다. 어떤 시인은 우리 시대의 병폐를 '생명에서 물건으로'라는 짧은 시구에 압축하기도 했지만, 사실 물건의 소비주의를 탓하고 나무라는 것은 너무도 진부하고 식상한 일이다.

어떤 기자가 성공한 기업가의 인터뷰 기사에서, 오직 사업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그에게 '몰스킨 다이어리의 질감과 몽블랑 만년필의 필기감에서 작은 행복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고 쓴 문장을 보고 짜릿한 통쾌함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그것에서 삶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는, 단지 값비싼 물건들을 잔뜩 갖고 있으며 그것을 마음껏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잘 들고 다니지도 않는 명품 가방을 잔뜩 사 모으는 누군가들의 호사스런 취미와도 물론 다르다. 그러니까 물건에서 오는 삶의 행복이란,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나날이 더 각박해지고 그 속내는 모두 외로움으로 곤궁하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물건을 누리지 못하고 물건이 사람을 부리는, 사람과 물건의 그 전도된 관계 때문이리라.

소설가 김훈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물건애호자가 아닐까 싶은데,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는 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독일제 스테들러 연필로 원고지에다 글을 쓴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김훈의 그런 사치가 좋아 보인다. 억대의 자동차 대신에 그는 명품 자전거를 타고, 값비싼 노트북을 두드리는 대신에 그는 품질 좋은 외제 연필로 또박또박 글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자전거로 누비고 다닌 사연들이 그 연필로 쓴 문장으로 만날 때, 나는 그 명품의 글쓰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요. 다만 귀하다는 것은 알아. 명품은요, 내 몸에 딱 맞는 게 명품이에요." 좋은 물건이 좋은 임자를 만나면, 그렇게 그 물건은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한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사소해 보이는 물건보다는 추상적인 관념을 더 사랑하는 이들도 있다. 국가나 민족의 번영이나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들 말이다. 물론 몽블랑보다야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때때로 그런 관념의 어휘들이 맥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구체성의 감각이 결여된 말의 공허함 때문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이 외치는 인류애보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의 사랑이 절실한 사람이 인류애를 말 할 때가 더 미덥다는 말이다. 물론 강아지는 물건이 아니지만, 사소한 물건 하나를 애호하는 마음에서부터 사랑은 더 견고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히 무소유로 달관할 수 없다면, 소유하는 것들에서 배울 수는 있지 않을까.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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