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럽의 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조각조각 분할돼 소국으로 전락한다. 군대의 양성도 금지됐다.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독일과 동맹을 맺어 연합국에 대적한 것에 따른 응징이었던 것.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도 금지됐다. 가혹한(?) 패전 책임에 대한 독일의 울분이 거세질 무렵 히틀러의 나치가 등장한 것은 다들 아는 대로다.
재무장에 성공한 히틀러는 1937년 1월 베르사유 조약의 폐기를 선언한다. 이어 1938년 2월 그는 오스트리아 합병을 공식 선언했고 3월 빈을 점령했다. 4월엔 독-오 통합을 안건으로 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나치의 위협 속에서 오스트리아인 99.75%, 독일인 99.08%가 찬성해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한 주로 편입돼 지도에서 사라졌다. 오스트리아의 독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한참 후인 1955년에야 이뤄졌다.
어딘가 기시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 바로 요즘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 러시아-크림의 합병의 흐름과 흡사하지 않은가. 크림 반도는 원래 타타르인의 영토. 15세기 말 오스만투르크가 점령했지만 1783년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여제가 러시아의 영토로 병합했다. 그랬다가 1954년 우크라이나에 편입됐고 1991년 구 소련의 해체 후 우크라이나 소속 자치공화국이 됐다.
올 들어 친러 우크라이나 정권이 시민봉기로 무너지면서 러시아군이 크림반도를 장악하자 러시아와의 합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크림 자치정부는 서방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국민투표를 실시해 러시아와의 합병을 의결했다. 투표율 83%에 96.8%의 찬성률. 주민 다수가 러시아계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환호했다. 크림 의회는 러시아에의 귀속 청원을 의결했고 러시아 하원도 이를 지지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도 크림의 독립공화국 지위를 승인했다. 러시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큰소리쳐 왔으니 합병을 곧 본격화할 듯. 스타일 구긴 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이로써 러시아와 서방의 신냉전이 시작될 조짐이다. 합병을 주도한 정치인들에 대한 경제 제재도 시작됐다. 국민투표가 합병의 추인 장치가 되는가도 쟁점. 역사는 돌고 도는 모양이다.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이 제2차대전의 씨앗이 된 교훈을 되살려 무력 분쟁의 불씨를 만들지는 말아야 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