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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딱딱한 뼈 깎기 /최원열

섬 노예는 언급없고 선거유세 요란해…사회·국민 변했는데 정치인도 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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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개봉될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기다려진다. 스티브 맥퀸이 메가폰을 잡은 '노예 12년'. 내달 열릴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수작이다. 미국 노예해방 운동에 불씨를 댕긴 솔로몬 노섭의 자전적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담은 것인데 주제인 '찬란한 슬픔'을 담담하지만 가슴 뭉클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인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삶을 만끽하던 흑인 음악가 노섭은 연주여행을 떠났다가 졸지에 노예로 전락한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그가 깨어나보니 족쇄가 채워진 외딴 곳. "나는 자유인"이라며 울부짖지만 돌아온 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채찍질이었다. 남부지역에 노예로 팔려간 노섭은 무려 12년간이나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농장 주변의 기막힌 풍광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건 삶의 역설인 동시에 노예 노섭에게 자유인으로의 복귀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암시가 아닐까 한다.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도는 미풍, 한껏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을 보면서 노섭은 찬란한 삶, 자유에의 의지를 다지며 뚜벅뚜벅 나아간다.

이 영화의 복사판이 지금도 버젓이 우리 사회에서 활개치고 있다. 이른바 '섬 노예'가 그것이다. 전남 신안군 외딴 섬 염전밭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 두 장애인의 스토리는 노섭과 다를 바 없다. 채찍이 각목으로 변했고, 강이 바다로 바뀌었을 뿐이다. 경찰을 얼마나 못 믿었으면 몰래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 가족에게 살려달라고 했겠나. 검은 돈과 부패 권력의 유착을 이처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또 있을까싶다. 대통령이 나서 지적했건만 관할 전남 목포경찰서가 치안보고회 자리에 무용단을 불러 부채춤과 노래를 감상하며 여흥을 즐겼다니 이게 제정신인가.

비단 공권력뿐만이 아니다. 민생을 외면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치판을 한번 보라. 섬 노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거리로 뛰쳐나가기 바쁘다. 오죽했으면 네티즌들이 "그럴 시간 있으면 강원도에 가서 눈이나 치우라"며 분노했을까. 선거병이 도지면 약도 없다지만 해도 너무 했다. 일하는 국회는 사라진 지 오래다. 너도나도 출판기념회 열어 뒤탈 없는 돈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착한 정치를 하겠다고 침이 마르도록 얘기해 놓고는 나몰라라 하는 이들을 선량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집권여당의 중진 의원이 한 말은 참으로 가관이다. 관심이 온통 쏠린 올림픽을 얘기한 것까지는 좋은데 "김연아 이상화 같은 딸을 많이 낳아야 한다"니. 이야말로 '현대판 우생학'이 아닌가. 잘 키워야 스타가 나오지, 스타로 태어날 수는 단언컨대 없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소.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기나 하나.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도, 부상 투혼을 발휘하면서 끝까지 내달린 태극전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비록 러시아로 귀화했지만 금메달리스트 안현수를 국민들은 자랑스러워했다. 그만큼 사회가 달라졌고 국민들이 변했다.

"맛있는 고기는 다 먹었다. 이제 물어뜯기 어렵고 딱딱한 뼈만 남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한 말이다. 멀고도 어려운 개혁의 길로 들어선 비장함을 담았다. 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를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그 입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들 스스로가 딱딱한 뼈이기에. 그리고 눈앞의 달콤함에 젖어 뼈를 깎는 고통을 아예 모르기에.

솔개는 환골탈태, 가히 초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낡은 부리를 쪼아내고, 발톱을 빼서 생존무기를 바꾼다고 한다. 그 정도의 노력이 있어야 새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정치와 경제 개혁도 뼈를 갈아끼우고 태를 벗길 만큼 힘든 과정을 견뎌야 가능함을 왜 모르는가. 고물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면서 창틀 갈아주며 번 돈으로 딸을 쇼트트랙 태극전사로 키운 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뒷바라지가 바로 '딱딱한 뼈 깎기'의 본보기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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