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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말 할 줄 아는 대통령 /김갑수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말하던 그의 '돌직구'가 요즘 그리워진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1-21 19:26:4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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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 마흔두 살의 초선 의원 노무현이 처음으로 대정부 질문에 나선다. 떨림이 서린 초선 의원의 일성은 이렇게 시작한다.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요구 안 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처음부터 그의 언어는 요즘 표현으로 '돌직구'였다. 그는 무엇에 항의하고 싶었던 것일까.

"청년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온갖 도둑질을 다 해 먹으면서 바른말 하는 사람 데려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까, 그 사람들이 임명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게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는 집권세력의 정당성을 묻고 있었다. 그때 그가 본 대통령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이고 '온갖 도둑질을 다 해 먹는 사람'이었다. 현직 대통령을 범법자로 규정하면서 곧장 이어간 경세의 말은 이렇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약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말하고 있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약자의 설움과 한을 말하고 싶어 했다.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살게 되고 임금의 격차가 줄어져서 굳이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안 올라가도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는 또한 약자의 희망을 말하고 싶어 했다.

그가 소박한 언어만을 구사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재임시절 벤처 기업인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그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신랄히 지적하고, 대안으로 앤소니 기든스를 원용한 사회투자국가론을 역설한다. 이때 했던 그의 발언이다. "제 생각에 보수주의의 문제점은 정의가 없고, 연대의 가치가 없고, 지속가능한 미래의 전략도 제가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한번 해보자!" 그는 언제나 선명한 주장, 찬반을 불러오는 논쟁적 자세를 지녔다. 때로는 절절한 호소와 설득을, 또 때로는 분노와 경계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말을 하고 할 줄 아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치인이었다.

그의 후임으로 두 명의 대통령이 등장했다. 한 대통령이 말한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다음 대통령도 말을 한다. "통일은 대박이다." 이 무슨 베이비토크란 말인가.

취임 1년 만에 첫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단'했다는데, 각본에 짜여진 질의응답을 프롬프터 보면서 외우는 대통령을 보았다. 그나마 나온 발언이 정책적 무게가 전혀 실리지 않아 뜬금없기 이를 데 없는 '통일 대박' 운운이었다.

영화 '변호인'의 1000만 관객은 그래서 가능했던 것 같다. 진심이 실려 있는, 말 할 줄 아는 인물을 영화가 보여줬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래서 자기 기득권을 내던지고 남들이 회피하는 고통의 바다로 뛰어드는 정치인의 탄생 배경에 관객들은 몰려가 울었다. 저런 인물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이 정말로 존재했었던가 반문하면서. 저런 인물을 처참히 짓밟았던 기득권자들의 언어공학에 놀아났던 과거를 아파하면서.

지금 우리는 정부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을 향해 "묵과하지 않겠다, 용납할 수 없다"라는 표현을 쓰는 대통령 치하에서 살고 있다. 그런 무례하고도 오만방자한 말을 듣고서도 군주에게 머리 조아리는 신민인 양 맞서지를 못한다. 설사 정부의 정책 실패를 참고 견딜지언정 저런 모욕적 언사는 참을 수가 없다. '권력의 힘으로 감옥에 가둘 수는 있겠지만 나의 생각을 용납하거나 말거나할 권리는 대통령 당신에게 없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 국가 행정수반이 국민을 향해 저런 언사를 쓴다는 말인가.

머지않아 영화 '변호인'의 막은 내리겠지만 그 변호인이 생전에 남긴 말은 기억될 것이다. 그 중 한마디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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