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이면 누구나 새 각오로 한 해를 시작한다. 우리 사회는 올 한 해 어떤 각오를 해야 할까. 어떤 문제를 가장 우선 해결해야 할까. 뭐니뭐니해도 일자리 창출일 게다. 그런데 그 일자리에 대한 접근과 해결 방식이 제각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에 공공, 노사, 세대, 이념 등 다양한 갈등 상황이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적 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경련이 주최한 국민통합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연간 최소 82조 원에서 최고 24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건강한 사회발전을 위한 사회통합 과제의 하나로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갈등관리 능력이 중요하다. 특히 정부의 4대 악 근절 등과 관련하여 유관 기관과 시민의 위기 및 갈등관리 역량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1952년 독일은 역사적 과오인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나치 청산 및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연방 정치교육원을 설립했다. 사회통합을 주도함으로써 국민의 민주의식을 함양하는 계기를 마련해 현재 15개 주에 주정치교육원이 독립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독일이 연방 차원에서 정치교육을 시작하고 각 주에 균형있게 교육원을 설치할 만큼 시민의 정치교육에 비중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의 작은 도시 북헌발트엔 600만 명의 유대인 대학살을 기억하는 전시관이 있다. 독일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이다. 가스실, 생체해부실 등 대학살의 현장에 온 듯 살벌함과 섬뜩함으로 소름이 돋는다. 독일 대학생들에겐 유대인 대학살 토론 과정에서 불꽃 튀는 지점이 있다. 기성세대가 충분히 사죄하고 죗값을 치렀기 때문에 그만 언급하자는 견해에 세계 유일무이한 지울 수 없는 역사로 대대손손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선다. 독일과 일본의 역사반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과오를 드러내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감춘다고 감추어지지 않는 것이 또한 역사적 과오이다. 더욱이 그것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타 민족 대학살이라면.
갈등의 해결점은 쌍방 간 소통에서 시작된다.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역사적 과오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지만 과거사를 들추어내어 기억하며 국민 모두가 소통하고 공유한다. 국민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기르도록 국가가 사회통합 정치교육원을 세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시민으로 하여금 역사와 소통하며 인식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갈등 중이다. 요람을 채우는 아이의 부족에서, 입시, 취업, 노후 준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은 다양하다. 여기에 학력, 빈부, 지역, 인재와 기업의 중앙집중 갈등까지 더해지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양한 갈등 해결은 소통에서 출발해야 한다. 독일 정치교육의 핵심은 소통방식이다. 교육 내용보다 갈등을 풀어 합의에 이르는 토론 방식이 중요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쉽게 진행하는 대규모 집합교육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식 상호소통의 교육방식이다. 수많은 이견을 두고 지겨울 정도로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계속된다. 처음 이 과정에 참여하면 시종일관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묻기 때문에 곤혹스럽다.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다양한 갈등상황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교육이며, 이러한 소통훈련은 일상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힘을 만들어준다.
일상에서 토론을 통한 소통훈련이 이웃 간 사소한 갈등으로 종종 삶을 앗아가는 사건을 최소화하는 묘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에 정부가 역할모델이 되어야 한다. 새 정부의 정보공개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국민과 좀더 소통하기를 바란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청소년문화존, 건강가정지원센터 예산의 삭감 전에 지역민의 의견을 충분히 조율해야 한다.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기 앞서 지피지기 백전백승을 교훈삼아 역사를 채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갈등은 불안요소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갈등을 바르게 다루고 해결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바로미터이다. 국가와 시민 모두가 지역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이해하고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 소통함으로써 사회통합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올 한 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첫 번째 과제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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