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한 무리의 시신이 발견됐다. 여자 21명과 남자 18명 등 총 39명이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해 집단자살한 것이다. 바지 호주머니에는 5달러75센트가 들어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대학 음대교수 출신의 '천국의 문' 교주 마샬 애플화이트와 신도들.

'천국의 문'은 지구 멸망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에 육신을 버리고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신흥종교집단이다. 애플화이트는 외계 비행체(UFO)를 타고 지구를 떠날 수 있다며 실행에 옮겼다. 그와 신도들을 집단자살로 내몬 건 거대 혜성 '헤일-밥'이었다.

직경 40㎞에 이르는 헤일-밥이 지구로 돌진했다면 그야말로 세상 종말을 맞았을 것이고, 애플화이트는 이를 육신에서 벗어날 마지막 기회로 여겼다. 5달러75센트는 UFO탑승권이었던 셈. 하지만 5일 후 헤일-밥은 지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유유히 우주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혜성은 오래전부터 양의 동서를 가릴 것 없이 죽음과 파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대 중국인들은 신이 우주의 모든 사악함을 쓸어버리는 데 사용하는 빗자루라고 믿었다. 빗자루가 등장하면 전쟁과 기근 질병 홍수 등 대이변이 일어난다며 혜성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혜성은 불길한 징조가 아닌 태양계의 기원을 밝혀줄 보석같은 존재로 변신했다. 금세기 최고의 혜성 '아이손'이 태양에 지나치게 접근하다 소멸됐다고 한다. 그 무시무시한 태양의 복사열과 중력을 견뎌낼 수 없었으리라. 아이손의 찬란한 우주쇼를 기대했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이손을 통해 과학자들은 우주의 비밀을 상당부분 캐낼 수 있었다. 분광기술을 통해 혜성 꼬리가스를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수분과 생명체에 필요한 유기화합물을 가득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메마른 원시 지구에 혜성이 물을 날라줬다는 가설을 입증할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45억 년에 이르는 생을 마감해 아쉽기는 하나 탱큐, 아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