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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칼럼] 아,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국가폭력 다름없어

신고리 3,4호기 완공지연 계기로 새로운 대안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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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3000명과 한전용역 1000명, 장정 4000명이 몰려와 스무 명 남짓한 70, 80대 할머니들을 쥐 잡듯합니다. 조상들이 뼈를 묻어온 땅을 76만5000볼트 송전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온몸 던져 움막생활을 한 지도 3년이나 됐습니다. 대통령은 TV에 나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지켜주겠다고 큰소리치는데 삶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우리는 짐승처럼 쇠사슬에 묶인 채 이리저리 끌려다닙니다. 무슨 민주주의가 이렇습니까. 이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어디에 하소연한단 말입니까. 제발 도와주십시오.

지난주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장에서 터져 나온 절규입니다. 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올해 민주시민상에 선정한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할머니들의 수상소감이었습니다. 지켜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 할머니들의 절규는 오늘 대한민국의 망가진 민주주의를 웅변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대대손손 이어온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게 된 이들,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애타는 외침이었습니다. 법이란 허울 아래 남용되는 공권력에 맞선 끈질긴 저항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땅에서 법의 이름으로 약자에게 자행되는 합법적 폭력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마는 밀양사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주민들의 의사는 아예 무시한 채 국책사업이란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고압 송전탑 건설의 본질은 오도된 국가권력입니다. 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법을 앞세워 수용을 강제하는 데 급급했던 게 사태를 이 지경으로 키워온 것은 아닌지요.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국민행복의 구호도 공권력에 내몰린 국민들에겐 배신감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송전탑 공사 재개에 앞서 국무총리와 산자부 장관 등이 현장으로 내려왔지만 그것은 공사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삶터를 송두리째 내줘야 하는 주민들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 건넸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9월 밀양을 방문해 밀양시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겠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고, 주민들의 하소연엔 귀를 막은 산자부 장관도 송전탑 건설의 불가피성만 강변할 따름이었습니다.

어쩌면 위정자들은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희생쯤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설득과 타협이 없는 독선적 추진은 국가폭력에 다름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국민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고 막대한 사회적비용을 유발하는지 몰라서일까요. 정부 당국은 송전탑 반대주민과 밀양시민 국민들 사이를 떼놓는 이간책을 선택했고, 여당 원내대표는 송전탑 반대를 종북세력이 개입한 불온한 행위로 색깔을 덧씌우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비열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밀양에는 경찰병력 수천 명이 주민들의 삶터에 점령군처럼 진주해 있습니다. 길목을 가로막아 가을걷이도 제때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공무집행방해로 주민들을 체포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주민 수십 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권력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이렇게 국민 상대로 적을 다루듯 전쟁을 치는 게 법치인가요. 법을 내세워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발상은 권력의 오만방자입니다.

신고리원전 3, 4호기가 핵심부품인 제어케이블의 불량으로 완공이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이들 원전 공사에 투입된 제어케이블을 전면 교체하는 데 일 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게 기회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년 여름 전력피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공사강행 명분이 사라졌습니다. 그 시한에 맞추기 위해 어렵사리 구성됐던 전문가협의회의 활동기간도 40일로 줄여 하나 마나 한 게 된 마당입니다. 이제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문제투성이 공사를 중지하는 게 우선입니다.

지금이라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머리를 맞대 협의하고 조율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국민의 행복을 내세우는 정부가 할 도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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