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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폰지 게임과 세금 꼼수 /강동수

'증세 없는 복지'란 허황한 장담은 접고

조세정의 지키면서 세금 늘리겠다고 솔직히 고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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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폰지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1925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국제 쿠폰 사업을 한다면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조건은 90일 만에 투자금의 1.5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 4만여 명에게서 1500만 달러를 거둬들였지만 아무런 사업도 벌이지 않고 흥청망청했다. 뒤에 들어온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들의 수익금을 준 게 그가 한 짓의 전부였다. 빚으로 빚을 갚는 이런 사기가 들통나지 않으려면 끝없이 투자자를 모아야 하지만 언제까지나 통할 수 있나. 끝내 사기행각이 드러나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는 이야기.

요즘 박근혜정부의 복지 정책을 지켜보자면 이 고전적(?)인 사례가 절로 떠오른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지난 대선 때 대통령 시켜주면 4대 중증질환의 진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겠다, 노인들에겐 월 20만 원씩 기초연금을 주겠다며 고수익을 보장하고 투자자(?)를 끌어모았던 거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자마자 이 두 가지 핵심공약이 대폭 후퇴했음은 다들 아는 대로다.

그것 말고라도 이것저것 공약한 게 많으니 이행하는 시늉이라도 하려면 돈이 예사로 드는 게 아니다. 박근혜정부 5년간 들어갈 추가 예산만 84조 원쯤 된다고 한다. 노인 기초연금만 놓고 보자. 모든 노인들에게 20만 원을 다 주는 건 고사하고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차등 지급하려고 해도 2017년까지 매년 8조5500억 원, 2020년 14조5000억 원, 2040년 88조6000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다음 정권이 빚의 시한폭탄을 물려받게 되는 거다. 그뿐인가. 영아 보육·양육수당 지급, 대학 등록금 지원 따위 큰돈 들어가는 공약이 좀 많은가.

돈이 많이 드니까 복지를 늘리지 말자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복지 확충은 선진국 진입의 마지막 관문이니 어떻게든 몸부림쳐 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금을 늘리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데 있다. '증세 없는 복지'란 구호 자체가 형용모순 아닌가.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하나. 복지를 늘리려면 돈이 들고, 그 돈을 염출하려면 세금을 더 거두는 수밖에 없다. 복지라는 개념은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있는 사람의 몫을 좀 덜어내 없는 사람에게 사회적 보호망을 쳐주자는 것 아닌가.

복지를 하려면 증세를 하든지, 증세를 않겠다면 복지 공약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 것쯤은 국민들도 다 안다. 증세를 않겠다고 큰소리 쳐놓고는 중산층과 서민의 유리지갑을 슬쩍 털려는 꼼수를 부리다 이번에 된통 홍역을 치르지 않았나. 대통령이 나서서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수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이 화난 이유를 모르는 모양이다.

국민들이 정작 화가 난 건 정부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쥐꼬리 월급이지만 복지 확충에 꼭 필요하다면야 연간 몇 십만 원쯤 세금 더 낼 용의가 있다. 그러나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부자들과 대기업의 몫을 먼저 덜어내라. 삼성전자의 등기이사 평균 연봉이 80억 원이 넘는다지 않나.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중산층과 서민더러 감당해 달라고 하라. 그런 과정은 생략하고 "거위 깃털을 고통 없이 뽑아내는 것" 따위 소리나 주절거리니 국민이 열받는 거다.
복지를 늘리려면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갑론을박도 해야 하고 국민에 대한 설득도 따라야 한다. "재원이 이러이러하게 필요하니 세금을 늘려야 한다. 그러니 국민 모두가 버는 만큼의 비율대로 부담을 더 져 주셔야 한다." 정부는 이렇게 솔직하게 왜 말하지 못하나? '증세 없는 복지'란 레토릭에 갇힌 대통령도 딱하고 그런 대통령의 심기나 살피며 우왕좌왕하는 경제 관료들도 한심하다. 공약 실천을 늦추고 늦추다가 차기 정부에 빚폭탄을 떠넘기려는 건가? 이래서야 폰지 게임이 따로 없다.

'양주의 학'이란 고사가 있다. 어떤 이가 "나는 풍광 좋은 양주의 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또 다른 이가 말했다. "나는 학을 타고 하늘을 날고 싶다." 마지막 사람이 이렇게 받았다. "난 돈 십만 관을 허리에 차고 학을 타고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 복지에 관한 한 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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