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제고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입자의 발견이 아니라 사라진 입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2003년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펜타쿼크 입자도 그 중 하나인데, 우연히도 같은 과의 동료교수가 이 입자의 최초 발견에 기여한 데 이어 필자도 전혀 다른 실험에서 새로운 종류의 펜타쿼크 입자를 최초로 발견해 졸지에 유명해진 적이 있었다. 펜타쿼크 입자는 자연에 널리 존재하는 대부분의 입자들이 두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다섯 개의 쿼크로 이루어진 완전히 새로운 입자이다. 이 발견은 생물학적으로 얘기하면 눈이 세 개인 새로운 종이 발견된 것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어서 그해 5대 발견에 선정되고 노벨상까지 거론되는 등 전 세계 과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연구결과에서 나타났듯이 지나치게 큰 오차범위와 여러 가지 모호한 성질 때문에 그 존재 여부에 대한 집요한 논쟁이 수년간 끈질기게 지속되었다. 마침내 2007년 과학자들은 충격적인 실험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이 새로운 입자의 발견에 대한 공고한 결과들을 내놓았던 한 연구그룹이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와 정확도로 수행한 동일한 실험에서 당연히 관측됐어야 할 펜타쿼크 입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한동안 과학자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면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까지 받아 진행된 실험이 펜타쿼크 입자의 신비를 벗기기는커녕 그 존재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자기부정적인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일관성과 논리를 생명으로 하는 과학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진 셈이었다. 결국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 그 연구그룹은 앞서 측정했던 펜타쿼크 입자의 흔적이 일종의 '착시'였음을 인정하는 연구결과를 서둘러 발표해야 했다. 그 후폭풍은 작지 않아서 이후 펜타쿼크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급랭하였고, 이 분야의 모든 연구는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펜타쿼크 입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일관적인 실험결과들도 엄존하고 있으며, 이 이해할 수 없는 결과들에 대한 연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 어떤 새로운 입자의 존재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우리가 진지하게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1차원적 세계관과는 사못 다른 과학적 세계관이다. 자기부정의 위험을 무릅쓸지언정 기정사실화된, 진실처럼 보이는 결과조차도 여러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의심하고 한층 공고한 진실을 찾아나서는 과학적 세계관은 비단 자연과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단순한 성패가 아닌 그 과정에 더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과학적 세계관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인류의 진보를 이룩한 주인공이 아니던가.
자연의 신비에 견주어 인간의 무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진리를 추구해가는 일은 인류의 지난한 노정이었으며, 여전히 출발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결과에 대한 자기부정조차도 서슴지 않으면서 끈질긴 논쟁과 연구를 멈추지 않고 진리를 추구해가는 과학적 세계관이야말로 진작 엄정하고 투명했어야 할 정당한 민주적 공명선거 과정조차도 결과의 논리에 의해 위협받는 이 사회가 진일보하기 위한 중요한 가치관이 아닌가 한다. 모름지기 그 과정에 대한 투명성과 시시비비는 지나칠 정도로까지 명명백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온갖 의구심을 키우면서 적반하장식의 다른 시비로 오도되고 있는 이 비상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말년에 완성한 장편소설 '파우스트'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저지르면서도 궁극적으로 파우스트 박사가 구원을 얻은 그것은 진리 자체가 아닌 진리를 찾는 고민을 멈추지 않는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한 신의 인정이 아니던가. '파우스트'에 나오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늘 헷갈리고 방황하는 법이다'는 괴테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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