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금통장의 거래명세를 확인하기 위해 한동안 방문하지 않았던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해 본다. 키보드 보안 응용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해야 한다기에 '예'를 누를 수밖에 없다. 수수료가 저렴하다기에 인터넷뱅킹을 선택해 본다. 수없이 많은 액티브X(ActiveX) 기반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 둘 보안프로그램이 한꺼번에 깔리다 보니 알 수 없는 에러도 곧잘 발생한다. 슬그머니 화가 치민다.

은행과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업무를 보려면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열고 뭔가를 계속 설치해야 한다. 바로 '액티브X'다. 그런데 이 액티브X가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다. 최근엔 이런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 제도의 불합리성을 극복하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액티브X 폐지 서명운동에까지 나서고 있다. 왜 이들은 액티브X를 폐지하자는 것일까. 바로 액티브X는 누구나 더 쉽고,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웹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액티브X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플러그인 기술이다. 따라서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익스플로러가 웹 브라우저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구글의 '크롬'이나 모질라재단이 만든 '파이어폭스', 애플사의 '사파리' 같은 웹 브라우저들이 익스플로러를 밀어내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평소에 크롬이나 파이어폭스 등 보다 편리하고 속도도 빠른 웹 브라우저를 쓰다가도 금융거래와 같은 작업을 할 때면 꼭 IE를 사용해야만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액티브X는 한 번 다운로드하면 사용자의 PC에 자동 설치된다. 자동으로 설치되므로 쓰기엔 편리하다. 그러나 사용자 PC 안에 설치되기 때문에 웹사이트에 악성코드가 숨어 침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금융계와 방송사에 휘몰아친 해킹사고도 보안 액티브X 응용프로그램 때문에 발생했다. 더불어 무분별한 액티브X의 남용은 사용자 PC에 수없이 많은 액티브X 프로그램이 설치되게 하여 컴퓨터 성능을 저하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공인인증서 같은 국가가 공인하는 보안기술은 액티브X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공공기관 및 금융기관에서 액티브X를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국가가 나서서 특정 기업의 웹 기술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엔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스마트시대를 맞았으나 스마트폰이나 태플릿PC에서는 액티브X가 실행되지 않아 예전보다 더 불편해졌다. 예전엔 편리한 기술이 지금은 일종의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 셈이다. 비록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요즘은 OTP(일회용 비밀번호) 등을 이용해 더욱 안전하면서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이 많이 개발되었다.

이제는 정부 여당과 정치권에서도 이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의 개선을 위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터넷 선진국답게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온라인 세계의 법과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