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퀴즈를 한번 풀어보자. 아이 사진을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둔 두 직장인이 있다. 그런데 평가가 엇갈린다. "김 과장님은 어쩜 이렇게 가정적이셔! 이 과장님은 이러니 직장일에 집중을 못 하지! 전자와 후자의 생물학적 성을 비교해 보시오"라는 퀴즈이다. 어느 쪽이 남성이고 어느 쪽이 여성일까.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엄격한 일·가정 양립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직장여성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빠지지 않는 단골주제가 있다.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보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일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변에 '반듯한' 직장을 갑자기 그만둔 친구들이 있다. 이유는 초등, 중등 자녀를 좀 더 잘 키우기 위해선 일과 가정을 더 병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만약 그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기업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면 어땠을까? 출산 및 양육휴가 이후에 어린 자녀를 돌보라며 지속고용을 보장하면서 50% 혹은 75% 시간제근무 선택권을 주었다면 말이다.
몇 년 전 출장으로 다녀온 유럽국가엔 현재 우리 정부에서 도입하려는 시간제근로를 현실화한 기관이 많았다. 비행기와 기차 연착으로 예정보다 1시간 늦게 기관을 방문했다. 들른 김에 다른 분야 담당자를 만나 정보를 수집하려는 계획은 접어야 했다. 해당 직원이 75% 시간제근로자로, 그날의 75% 근무시간을 채우고 퇴근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직장현실은 근무시간이 조금 지났더라도 남아서 먼 외국에서 온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게다. 기업문화 차이의 결정적인 한 단면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 직원은 어린 자녀를 돌봄으로 인해 이전 100% 근무에서 본인이 원하는 75% 시간제근로로 전환한 상태였다. 국가나 개인 차원에서 큰 손실인 여성경력단절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유럽의 시간제근로 적용이 무척 부러웠다. 유럽에선 일찍이 근로자의 생애주기별 혹은 개인의 요구에 따라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근로조건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기업경영에서 보면 이러한 유연함이 당장엔 비효율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가족친화경영은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정부가 시간제근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좋은 일자리, 반듯한 일자리가 뜬구름 잡기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여기에 선진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기존의 일자리를 잘 나눌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래서 기본적 근로조건을 보장하는 가운데 개인의 자발적 수요에 의해 일하는 시간을 조정하는 시간제근로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반갑다. 시간제근로를 가장 환영할 사람은 가족 특히 돌봄이 필요한 영·유아와 아동일 게다. 비단 일·가정 양립의 당사자인 여성근로자뿐만 아니라 한 직장에서 10년, 20년 일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한 번쯤 재충전, 직업전환에 관해 고민한다. 만약 우리 기업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간제근로를 도입, 적용한다면 다양한 이유로 근로조건에 변화를 원하는 직장인에게 지금의 일자리는 신나는 일터가 되지 않을까?
취지도 좋고 유럽의 성공사례도 있지만 모두들 딱히 한마디로 드러내지 못하는, 시간제근로 곁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있다. '맺고 끊고'가 힘든 우리 문화에서 과연 내가 '간 큰' 50%, 75% 근로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비록 지속고용 조건으로 고용주에 의한 일방적 해고는 없다지만 왠지 눈치 보며 찝찝하다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시간제근로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직장 내 분위기 조성이라는 남은 과제는 우리 스스로 풀어야 한다. 50%, 75% 시간제근로를 계약직 정도로 폄하하는 오해에서 벗어나 정당하고도 엄연한 고용의 한 형태임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말해야 할 때이다. 그럴 때 개인과 조직의 개발은 함께 윈윈할 수 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다면 이제 물을 마시는 행위는 갈증을 느끼는 자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활용자가 적다면 유명무실하다. 100% 근로 외에 시간제근로라는 다양한 근로조건을 도입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고용주와 근로자는 장기적인 이득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에 대한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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