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계획'을 세워놓은 사람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앞으로 10년 동안 읽어야 할 책, 써야할 글, 펴내야 할 책에 대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요동쳐도 제 삶이 크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초야에 묻혀 고전을 연구하는 한 인문학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10년 계획'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하루하루 파닥파닥 살아내는 데 급한 생활과 '10년 구상'이 있고 그에 따른 목적과 준비가 뒤따르는 삶은 같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얼마 전 부산의 상위권 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는 학생을 만났다. 어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 학생은 "반드시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고 여러 경로를 알아보는 중인데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아직은 막연하다"고 털어놨다. 불과 몇 년 뒤면 사회에 진출해야하는 상황인데도, 그는 "아직 막연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이 고3 때까지 오로지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만 부여잡은 채 온 에너지를 쏟아부은 뒤,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방황을 시작하는 모습은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많은 교사들의 의견이다. 올해 초 부산의 한 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공부방에 취재를 갔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여기 오는 중학생들이 가정형편은 넉넉지 않지만 심성들이 선하다. 그런데 꿈이 없다. 학교에선 수업에 몰입하지 못하고 방과후엔 게임할 궁리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교육환경이 좋지 못한 중·고교를 최근 방문했을 때도 교사들은 비슷한 고충을 호소했다. "맞벌이 부모가 일터에 나가 대화 기회가 적고, 학교에서도 딱히 꿈이나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학생일수록 무기력한 학창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성은 선하지만 학교생활은 무기력한' 많은 학생을 변화시킬 방법은 뭘까? 막연하게 들릴지 몰라도, 꿈을 심어주고 '미래의 나'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교육적 접근을 강화하는 것이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기성세대 중 적성·포부와 상관 없이 점수에만 맞춰 대학에 진학해 방황을 경험한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꿈이 없어 청소년기를 낭비했고 지금 그 시절을 후회하는 어른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다행히 정부가 진로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중학교 자유학기제' 도입을 준비하고 나서면서 진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교육청도 지난달 초·중·고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진로교육 로드맵을 밝히는 등 관련정책을 강화했다.
하지만 아직은 학생과 학부모가 피부로 느낄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진로박람회를 비롯한 일부 일회성 행사가 어느 정도 효과를 있는지 냉정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단기처방이 아니라 장기·지속형 프로그램을 더 개발해 안착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진로교육은 교육현장에서 중요한 흐름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교육당국의 만족도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에 달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