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과 관련해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학교폭력 사건 때마다 학교는 비난의 화살을 온 몸으로 감내한다. 결국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배운다. 공교육이라는 공고한 구조 속에서 배움과 관계를 훈련한다. 관계 속엔 갈등의 요소들이 있고 학교폭력은 다양한 갈등 속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학교를 떠올리면 초등시절 눈 비비며 일어나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러 등교하던 때가 아련하다. 출근시간, 체구만한 가방을 메고 올망졸망 열 지어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학창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렇게 학교는 우리 인생의 한가운데 자리했다. 자상하면서도 엄했던 선생님들은 우리의 친구이자 멘토였다. 중학교 사회시간, 사회과부도를 펴놓고 배우는 세계일주를 우리반 친구들은 참 재미있어했다. 어느 여름, 여학생들이 가장 혐오하는 바퀴벌레가 한 학생의 교복등짝을 기는 바람에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과 함께 뒷자리 학생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고, 앞 친구는 겁에 질려 울고불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날 수업은 비명소리의 주인공이 모든 책임을 지고 선생님의 훈시와 더불어 울음바다가 된 채 마무리되었다. 친구의 두려운 상황에 대한 대처를 가장 우선했던 선생님의 문제해결 방식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강조하는 인성교육이 아닐까 싶다.
사교육이 거의 없었던 그 시절, 선생님의 가르침은 배움의 거의 전부였다. 지금은 교사의 가르침이 단지 교육의 일부가 되어버렸지만. 잊지 못할 중학교 영어 첫 시간. "I am Tom, I am a student"는 내가 처음 배운 영어문장이다. 비록 난 혀를 자유롭게 굴리지는 못했지만 영어 시간만큼은 탐이었고, 학생이었다. 당시 영어 선생님의 존재는 원어민과 다름없었다. 지나간 추억이어서 아름답다는 감상주의가 아니라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우리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그 공교육이 최근 참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왕따, 따돌림, 폭력, 자살, 학생과 교사 간의 인권갈등 등으로 인해. 다들 위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변엔 학생들을 책임지고 가르치고 지도하겠다는, 여전히 살아있는 학교 또한 많다. 맞벌이가정을 위해 학교설명회와 학부모총회를 저녁으로 잡고 열린 자세로 학부모와 소통하려는 의지가 전해진다. 누구나 출마하는 반장선거는 성적순의 서열화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지도력을 존중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다양한 방과후교육에는 학생들을 공교육이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학교의 이러한 노력과 열정은 변화를 만들어내며, 학교 내 다양한 문제해결의 열쇠가 된다.
학교폭력은 근래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근본대책 중 하나는 공교육 살리기이다. 학교폭력을 공교육 내에서 어떻게 예방하고 풀어갈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는 교사의 학생 보듬어 안기이다. 선생님의 한마디가 학생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절절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학부모, 지역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그 방법과 절차에 가장 근본이 소통일 것이다. 우리에겐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한다. 지금처럼 그림자만을 부각해 학교폭력을 둘러싸고 학교와 교사를 질타해서만은 안된다. 그림자는 빛이 존재함에 따라 생기는 결과일 뿐이다. 학교가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지지와 격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독일의 발도르프교육에서처럼 인스턴트 교육이 아닌 교육의 기본을 강조해야 한다. 초등 첫 수업, 글자의 한 획을 배우는 데 몇 시수를 배분하는 바로 그 인내의 자세 말이다. 교사의 인내는 결국 학생을 인내하는 학생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조금은 부진하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학생을 향한 인내와 지지는 학생의 어느 인생시점에 결정적인 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교사라는 직업은 한 인간을 가장 빛내거나, 가장 처절하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다. 대한민국 선생님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조금만 더 힘을 내었으면 한다. 적어도 평교사로 은퇴하는 선생님의 선택이 학생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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