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애를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의존, 독립, 협력의 시기로 설명할 수 있다. 영·유아기와 아동기에 부모의 의존으로 시작해,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로, 성년기에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 협력하는 시기를 거친다. 각 시기를 잘 보내는 일과 더불어 다음 시기로 연결되는 일 또한 중요하다. 특히 의존의 시기에 충분한 돌봄과 사랑을 받는 일은 인격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인 독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타인과 상호협력하는 시기에 가장 우선되는 덕목은 배려일 것이다.
자녀의 보육시설 생활이 첫 번째 독립시기라면, 두 번째 독립은 학교 입학이다. 아이를 보육시설이나 초등학교에 보낼 때 부모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아이에겐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부모에겐 호기심보다 염려가 앞서기 마련이다. 독립을 잘하기 위해 의존의 시기에 필요한 사랑에는 규칙에 따른 훈육을 포함한다. 우리 사회는 이타주의를 강조하는 전통 속에서 서구의 개인주의에 거리를 두어 왔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부모교육에서 비교해보면 개인주의가 타인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반면, 우리는 더불어사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지만 현대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종종 자녀에 대한 애착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제한 채 아이의 기 살리기가 우선이다. 그 결과 식당이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선을 넘는 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려야 할 때가 자주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동방예의지국으로 상징되던 우리 문화가 언제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와 거리두기 문화로 변하고 있는 걸까?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우리의 현실을 한번 들여다보자. 유치원 재롱 발표회는 공식 비디오 촬영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부모들의 개인촬영으로 종종 질서를 잃어버린다. 좌석에 앉아 발표회 자체를 즐기는 일은 잊어버려야 한다.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펼치는 공동작품을 즐기려는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내 아이의 무대 동선을 개인 카메라와 비디오가 따라다닌다. 여기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려를 가르치는 데에 왕도가 없겠지만 일상에서 좋은 역할모델을 자주 접하는 것과 어릴 때부터 배려에 대한 훈육이 필요하다. 배려를 근본적인 삶의 문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독자에게 깨우침을 선사한다. 과거 흑인에 대한 편견이 지배적이던 미국사회에서 흑인 변론을 맡게 된 한 백인 변호사가 자녀에게 흑인과 백인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배려를 가르치는 내용이 소설의 중심 메시지이다. 아빠의 훌륭한 역할모델을 통해 자녀가 배려를 배우며 성장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진정한 배려는 서로 다른 타인들이 상호협력하며 살기 위해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인생관과 책임감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자녀에게 배려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일상의 작은 것부터, 즉 식사 때 가족들 수저 놓기부터 실천할 수 있다. 마치 식사 때마다 하는 당번의 역할처럼. 또한 빨래통으로 옮겨놓지 않은 옷들은 계속 입는 것으로 간주하고 빨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사소한 약속처럼 보이지만 지켜지지 않을 때 가족의 리듬을 깨트린다. 맞벌이가정이 늘어나는 오늘날 일·가정 조화를 위한 가족구성원의 역할분담은 건강한 가족생활의 첫걸음이다. 가족 내 역할분담과 책임에 기초한 상호협력은 이르면 이를수록 이롭다. 평생에 걸쳐 좋은 배려의 습관이 되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가족 내 최소한의 역할마저 감해 주는 것은 결코 배려가 아니다. 식사시간에 수저 놓기는 훗날 가정을 꾸릴 때 하나의 중요한 협력이 된다는 것을 지금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미래에는 맞벌이가정의 일·가정 조화를 국가가 더 홍보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21세기 부모의 역할에서 과거의 엄한 부모님 상(像)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단순히 전통에 대한 고집이기보다는 배려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밑거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땐 적어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슴 속에 새기고 어느 정도 실천하며 살았다고 자부한다. 오늘의 부모들 역시 자녀에게 상호협력하는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지금 바로 일상에서 배려를 위한 구체적인 삶의 기술을 실천하며 가르쳐야 한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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