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입 수시모집에 이어 정시모집의 대장정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입시는 수험생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과 학교, 나아가 나라 전체의 이슈가 될 정도로 늘 강력하다. 66만8000여 명의 수험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상위 몇 %를 목표로 오랜 시간 모든 것을 접어두고 질주한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는 상위 몇 %의 인재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보통의 다수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살아가는가가 관건이다. 그들이 결국 우리 사회의 허리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무엇보다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학생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우연히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란 주제로 제작된 6부작 TV 프로그램 중 교육 부문을 접했다. 네덜란드의 한 의과대학은 의과생을 추첨제 방식으로 선발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 추첨제를 통해 의대 진학을 열어주는 학교가 얼마나 될까? 여기에는 수치화된 학업성적만을 의대 입학의 평가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의사의 자질을 전문지식 능력뿐만 아니라 환자와 상호작용하는 소통능력까지를 고려한 것이다. 추첨제 방식은 내신성적에 따라 할당 비율에 차이를 두어 평범한 실력의 학생에게도 의학공부 기회를 부여한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그들도 지속되는 학업의 축적을 통해 의대 과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재 선발 과정에서 소수의 비범과 다수의 평범 간에 경계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린 사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을 어떻게 잘 평가할 것인가? 열린 교육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선진 복지국가가 말하는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회의 평등, 즉 평등한 기회를 다수에게 얼마나 많이, 자주 여러 장치를 통해 마련할 것인가이다. 수치화된 성적 외에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가치가 작용한다. 지적 능력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능력 등 사회적, 정서적 능력까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인재를 어떤 기준으로 찾고, 교육하고, 평가하는가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우리는 선진 복지국가들이 인간을 잘 교육하고 평가하기 위해 어떤 교육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속에서 근간이 되는 교육철학과 사회적 가치를 읽어내야 한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겠다는 스웨덴의 교육철학, 국제학업성취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에는 장학사 없이 단위학교 교장이 필요한 감사를 한다. 그 정도로 교사와 직원은 신뢰받는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평가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낮은 편이다. 장학사 시험도 교원능력개발평가도 모두 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뢰가 부재한 평가는 혼란과 함께 평가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든다. 평가를 포함한 교육시스템에는 한 사회의 지배가치가 담겨 있다. 우리의 교육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해 4년 후, 6년 후 선망받는 직장인으로 성공하는 것만을 앞세우고 있다.
성과지향의 강박관념은 결국 수많은 학생들을 유치원 때 초등과정을, 초등학교 때 중등과정을, 중학교 때 고등과정을 앞당겨 배우게 만든다. 사교육 전문가의 도움까지 보태져 배움이 경쟁적인 질주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들에게 성공의 비법을 알려준다.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낙오되지 않으려면 최고를 향한 질주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과연 현재의 행복 없이 미래가 행복해질까? 공자가 배움의 기쁨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표현한 것처럼 배움에 적절한 시기와 즐거움이 따를 때 그 배움은 살아있고 내 것이 된다.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제공과 공정한 평가는 유연한 공교육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1세기 인재의 기준으로 비범한 소수뿐만 아니라 평범한 다수를 포함시킬 때 우리의 교육은 변화 가능하다. 비범한 소수 선발에 목숨 거는 입시제도에서 벗어나 평범한 다수를 훈련하려는 사회적 노력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새 정부가 귀를 열고, 소매를 바짝 걷어 올렸으면 한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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