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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슬픔도 힘이다 /강동수

올해도 애썼던 우리, 슬픔과 고통을 나눌 가족과 이웃을 버팀목 삼아 짐짓 희망 거는 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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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모입니다. 지난 한 해 어떠셨습니까. 한세상 살아가는 것의 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지워지는 법이라 크고 작은 기쁨과 행복, 때로는 슬픔과 좌절을 겪으셨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무탈하게 한 해의 석양에 섰습니다. 그것만도 감사할 일이지요.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것을 허락한 섭리에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지요.

저는 올 한 해 묵묵히 '살아내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담아 이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그렇지요. 나이가 하나 둘 들면서 묵묵하다는 것의 힘, 살아낸다는 것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겠습니다. 올 한 해 부지런히 살아내신 모든 분들께, 그리고 이웃이 돼 주신 모든 분들께 동시대를 사는 이름 없는 장삼이사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중에도 올 한 해가 더 고달프셨던 분,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았던 분들께 각별한 감사와 위무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자기가 표를 던졌던 후보의 낙선으로 상심했을 1469만 명의 이웃과 함께 위로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 지인들 중에도 요즘 뉴스를 볼 낙이 사라졌다는 분들 많거든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자신이 많이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화인(火印)이 가슴에 찍혔다 해도 그 누구도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직선제가 처음 도입됐던 1987년 겨울의 좌절과 비통, 분노와 비교해 보면 지금 우리의 차분함과 냉정이 오히려 기이할 정도입니다.

아마도 세월이 우리를 키운 듯합니다.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뒤집힐 것도, 낙원이 하루아침에 도래할 것도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 게 된 것이지요. 어쩌면 세상이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기도, 우리나라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지난 수십 년 동안 분투해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오늘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 사람들인 걸요.

새로 대통령이 되시는 박근혜님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우리는 당신이 모든 걸 잘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선거운동 때 한 모든 약속을 기억해 주세요. 다는 못 지키더라도 기억은 해 주세요. 1469만 명 모두를 껴안으라는 말씀까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적대하지는 마십시오. 잊지 마세요. 그들이 지금 실연한 사람처럼 황량한 가슴을 껴안고 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투표 일주일 만에 벌써 네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신이 희망이었다면 왜 그들이 죽었겠습니까. 당신의 당선이 절망이었던 사람들도 이 땅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이 추운 새벽에도 거리를 청소해 주신 분들, 제가 맛있게 먹었던 점심 그릇을 설거지해 주신 아주머니들, 출근길을 도와주신 버스기사님들 다들 고맙습니다. 하고 보니 무슨 대통령 후보의 말투 같아 민망한데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 존중 받아 마땅한 사람인데요. 아, 감사할 사람이 또 있습니다. 얇은 봉투나 건네주는 저를 올 한 해도 끼니 거르지 않고 거두어 먹인 제 아내, 지금 휴전선에서 총 들고 서 있는 제 아들…. 어디 저만 그렇겠나요. 다들 그렇게 이웃과 살붙이들에게 감사하고 사는 거 잖습니까.

내년에도 우리 모두 또 허리띠 졸라매야 겠지요. 아이들 등록금 대느라 허리 휘는 제 동년배 친구들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잠 못 이루는 내 아들과 딸의 친구들, 아비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없는 희망이나마 가불 받아 사는 게 우리네 살림이 아닌지요. 힘 내서 또 한 해 살아내 보십시다. 살다 보면 슬픔도 힘인 법입니다. 이 제야의 밤에 제가 사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주시는 모든 분들의 평강을 빕니다. 시 한 구절 선물로 보냅니다.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첫 아이를 사산한 그 여인을 위하여 기도하고/ 불빛 없는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 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 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호승, '슬픔을 위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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