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부터 연말이면 '부산여성가족 통계연보'를 발간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미 나와 있는 여러 통계를 부산여성 중심으로 재편성해서 보기 좋고 알기 쉽게 정리하는 일이다. 300개가 넘는 통계표에 자료를 입력하고 추이를 살펴보는 작업이 즐거운 이유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와 징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눈여겨 볼 만한 통계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가족분야에서는 20년 이상 함께 생활한 부부의 이혼이 29.1%로 전체 동거기간별 이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이러한 추세는 2008년부터 시작된 이후로 지속되고 있고 전국적으로 비슷한 양상이다. 이 같은 현상은 길어지는 노년기, 이혼과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혼인기간에 형성한 재산분할에 대한 법과 제도 개선 등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경제분야에서는 여성 취업자가 40대〉 30대〉 50대 순으로 많다가 2010년 이후로 40대〉 50대〉 30대 순으로 바뀌었다. 퇴직한 남편과 미취업 자녀를 대신해서 일하러 나서는 50대 어머니들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오십을 넘기면 삶이 여유롭고 안정적일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그런 기대를 품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우울한 통계 가운데 반가운 통계 하나가 눈에 띈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중에 출산을 전후해 휴가를 사용한 여성이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기대가 반영된 긍정적 결과로 볼 수 있다.
건강과 관련해서는 부산시민 모두 '건강관리와 건강증진 서비스'를 복지 중에서 으뜸으로 꼽았다. 필요한 복지서비스 중에서 무엇보다 '건강검진'과 '간병서비스'가 절실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육체적 건강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마음, 혹은 생각은 어떨까? 부산여성 중에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009년 43.6%에서 2011년 38.8%로 낮아졌다. 60대 이상 여성에서는 큰 변동이 없는데 50대 이하의 모든 연령층에서는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되지 않는다. 앞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부산시민의 건강에 대한 인식과 실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진단해주기를 기대한다.
육체적 건강 못지않게 정신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정신건강의 중요한 지표인 우울감에서는 어떨까? 우울감 경험률은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경험한 비율이다. 부산시민의 우울감 경험률은 5.5%로 전국평균 4.5% 보다 높다. 부산여성의 우울감 경험률은 7.1%로 부산남성의 3.9%보다 높고 특히 60세 이상 부산여성의 우울감 경험률은 8.7%에 이른다. 실제로 우울증으로 의사진단을 받은 사람비율도 부산의 전체 평균이 2.3%인데 비해 60대 부산여성은 6.7%로 높다.
무엇이 나이 든 부산여성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일까? 2011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부산의 여성노인은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한다. 또 다른 통계청 자료를 보면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부산여성은 57.0%로 전국여성 평균 58.5%보다 낮고 서울여성의 68.2%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노후생활을 걱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비가 미흡한 편이다.
게다가 노후를 자식에게 의탁하겠다는 부산여성이 13.8%로 전국여성 평균 11.1%보다 높은데 반해 노부모 부양의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고 여기는 부산시민의 태도는 2006년 61.0%에서 2010년 36.9%로 뚝 떨어졌다. 노후준비가 미흡하다고 자식에게 도움을 청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니 날은 어두워지는데 갈 길은 멀고 짊어진 보따리는 무거운 형국이다.
올해 통계로 살펴본 부산여성의 삶은 대체로 유쾌하고 즐거운 통계보다는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더 많다는 점에서 예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변화의 키를 쥔 세대가 50대로 이동했으며, 고령사회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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