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선거가 3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유력한 후보들이 연이어 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주요 공약이 서로 닮아 변별력이 없어 보이는 게 이번 선거의 특징인 것 같다. 이런 가운데 10월 27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한민국 여성혁명 시대'를 선포하고 '여성대통령론'의 불씨를 지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은 1987년 사회민주당의 홍숙자 후보가 처음이었다. 뒤를 이어 1992년 쇼트커트에 남성 정장을 입은 신민당 김옥선 후보가 등장했다. 당선권 밖이던 두 사람은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는 기록만 남겼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여성후보가 없다가 2012년 대선에 새누리당 박근혜, 진보정의당 심상정, 통합진보당 이정희, 노동계 대선 후보로 김소연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지난 총선 때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이었던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 등 모두 5명의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여성대통령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니 실로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여성대통령론이 제기된 이후로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비하 발언에 이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라는 직설적 반박에만 대중적 관심이 쏠리고 있어 안타깝다. 정작 주목할 점은 한편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여성임을 강조하면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 자체가 쇄신이고 놀라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만 강조한 선거전략으로 여성주의적 삶의 궤적과 마인드를 갖춘 '여성주의적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고 맞받아치면서 대통령의 여성적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보다 활발한 여성적 리더십 논의를 기대하면서 여성대통령론을 시작한 여권의 유력 후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과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던져보고자 한다.
첫째, 어머니를 대신해 수행한 퍼스트레이디 역할은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또 수십 년 전과 현재의 성평등 수준과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여성 후보로서의 자질을 검증한다는 것은 가혹하고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본인이 결정해 정계에 입문한 지난 15년 동안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여성대통령론을 주장한 이상 여성주의적 대통령론으로 날카롭게 검증하려는 반대편 사람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
둘째, 여성대통령이 되면 '정부 요직에 여성을 참여시키고 여성의 고위직 비율이 높은 회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요직에 여성 진출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남성 대통령 후보들도 해왔던 주장이지만 민간영역까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범위를 넓힌 것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어 환영한다. 기업의 여성 고위직 진출이 활발한 선진국을 보면 여성의 성장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부수기 위해 인센티브뿐 아니라 강력한 페널티를 적용하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구사할 때 성과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셋째, 여성적 리더십을 갖춘 리더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실질적 평등을 이룰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적 평등만으로 실질적 평등 실현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적극적인 우대조치로 실질적 평등실현을 지원하고 있다. 이의 연장선에서 볼 때 형식적 참정권은 보장되어 있지만 실질적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유권자를 위해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야권의 제안을 외면하는 것은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는 여성적 리더십과 어울리지 않는다.
넷째, 이명박 정부 들어 여성가족부의 위상은 약해졌고, 일이 생길 때마다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도 여성가족부 존폐를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12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성별격차지수를 통해 평가한 한국의 성평등 수준은 135개국 중 108위로 꼴찌에 가깝다. 그런가 하면 지난 10월에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2년 여성정책 수요조사'를 보더라도 풀어야 할 성평등 과제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여성 리더로서의 비전과 전략, 그리고 이를 실현할 정부 조직 안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구체적인 답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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