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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디낭에 가다 /박형섭

색소폰이 탄생한 뫼즈강 다리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꿈꾸듯이 연주했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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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10-19 20:02:10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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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디낭에 꼭 한번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가 지난 여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디낭은 프랑스 벨기에 국경지대에 위치한 뫼즈 강변의 작은 도시. 프랑스 국경도시 샤를빌-메지에르에서 자동차로 오십여 분 거리였다. 오는 길에 마주쳤던 선사시대 종유석 동굴과 대저택들의 안내판들이 떠올랐다. 강과 숲 깊숙이 들어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강변 숙소에 짐을 풀고 산책에 나섰다. 강 건너편에 강과 나란히 철길이 나 있었다. 강변을 따라 조금 걷자 암벽이 병풍처럼 비호하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에 이르렀다. 성당 앞은 사방으로 길이 퍼져나가는 마을의 교차로였다. 그 중 하나는 다리로 이어졌다. 성당 앞 광장을 돌아 다리로 들어섰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다리 양편 보도에는 다양한 색깔의 색소폰 조형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색소폰 다리였다.

이제 이쯤에서 내가 그토록 디낭에 가고자 했던 이유를 밝힐 때가 되었다. 디낭은 색소폰이 태어난 도시, 곧 색소폰의 고향이다. 예로부터 디낭은 동과 놋쇠제품의 산지로 유명했다. 이 디낭에 아돌프 삭스라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뛰어난 악기제작자였다. 소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공방에서 놀며 아버지가 악기를 제작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여섯 살 때 소년은 아버지가 만든 클라리넷에 구멍을 내기도 하고 나팔 모양으로 돌려 깎아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공방은 소년의 놀이터였고, 아버지가 만든 악기들은 소년의 장난감이었다. 집요하게 조립하고 변형하기를 반복하면서 소년이 얻고자 한 것이 있었다. 새로운 음이었다. 새로운 음에 대한 열정은 소년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했다. 소년은 열다섯 살에 브뤼셀 산업박람회에 상아로 만든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출품했다. 스무 살 때에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베이스 클라리넷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소년은 음악 이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악기 개량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는 현악기와 관악기 사이의 음색, 나아가 금관과 목관악기의 음색의 차이를 탐구했다. 실험과 창조정신으로 거듭된 실패를 물리치고 마침내 원추관 모양의 새로운 악기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목관도 금관도 아닌 음색, 탁하면서 동시에 청아한 음색의 악기. 바로 삭스(Sax)가 발명한 소리(phone), 오늘의 색소폰이다. 색소폰은 현악기의 유연성, 목관악기의 음색, 금관악기의 음량을 겸비한 악기가 되었다.
강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집들과 다리를 수놓은 색소폰들을 감상하며 다리를 건너갔다가 다시 건너왔다. 마치 다채로운 색소폰들의 공연장 한가운데를 걷는 듯 환상적이었다. 저녁 바람은 상쾌하고 강물은 유유히 흘러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성당 앞을 지나 아돌프 삭스 씨네 집으로 향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마음씨 좋게 생긴 중년 사나이가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걸음을 재촉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악수를 청하듯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돌프 삭스 씨!" 그러자 그는 오래 사귀어온 지인처럼 미소를 머금으며 나를 자기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내 귀에 속삭였다. "바로 이 집에서 내가 악기를 연구하고 만들었다네." 나는 그의 등 너머 입구를 바라보았다. 색소폰 박물관이었다. "내가 처음 실험한 여러 종류의 악기들, 도구들, 악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네. 미국 전 대통령 클린턴 씨도 내 색소폰을 즐겨 연주한다네. 자네, 내게 멋진 한국 노래 한곡 연주해주겠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디낭에서 색소폰 연주를!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내 손에는 색소폰이 들려져 있지 않았다. 깜박 잊은 것이 생각난 듯 벤치에서 일어섰다.

디낭을 떠나기 전 나는 색소폰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연주했다. 다리를 수놓은 만국기들과 다채로운 색소폰들, 힘차게 흘러가는 강물과 싱그러운 바람결을 따라 흐르는 색소폰의 선율. 디낭을 떠나며 삭스 씨에게 들렀다. 지인 특유의 미소가 입가에 번져 있었다. 아침 햇살이 청동으로 조각된 그의 전신을 감싸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부산대 교수 불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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