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름 지향의 사회돼야

언제인가부터 대한민국의 도시들이 닮아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조금씩 닮아가던 도시들이 공동주택단지의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거의 흡사해져 버렸다. 어느 도시든 우리 눈에 비춰지는 풍경은 유사하다. 이정표를 보아야만이 그 도시에 온 것을 알 수 있을 지경이다. 우후죽순처럼, 또 병풍처럼 둘러친 고층 아파트, 범용적 모습의 집합주택과 가로변 건축물들, 혼란스러운 가로 장치물들과 가로 입면들, 그리고 요란스러우나 세밀하게 시공되지 못한 도시의 바닥도 한몫을 한다.

왜 우리 도시들은 이런 모습으로 변화되었고 지금도 변하고 있을까. 도시를 빈 그릇으로만 이해하고 너무 급하게 채워만 온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 자신의 것이 가장 훌륭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망각도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채우는 것이 미덕이다 보니 새로운 것을 위해 원래의 것이나 소소하고 약한 것들을 파괴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뭔가와 닮아간다는 것은 한쪽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는 얘기다. 이의 대상은 정치, 경제,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어느 한 분야도 빠지지 않는다. 쏠림은 결국 '따라 하기'라는 병폐를 낳고 있고, 남과 다른 내 것에 대한 스스로의 재발견이나 남의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점차 사라지게 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국 크고 강한 것만 살아남게 된다. 작고 약한 것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몰개성의 그저 그런 힘센 가짜들이 판을 치는 그런 세상이 된다.

몇 년 전부터 국민 모두는 똑같은 시장, 같은 빵집, 유사한 김밥집, 비슷한 찻집에서 거의 닮은 삶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닮아감의 한 부분에 국한된 얘기이지만, 시골 읍내에서 우연히 만나는 프랜차이즈 빵집은 반가움에 앞서 섬뜩함마저 들게 한다. 시골 사람들은 프랜차이즈 빵을 먹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가 똑같아져야 하는 현실이 무서워서이고 조금이라도 좋다면 당장 몰려다니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까워서이다. 또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파리에서는 매년 500여 개 시내 빵집이 모여 벌이는 바게트 경연대회가 열린다. 길이 55~65cm, 250~300g 규격의 가장 맛있는 바게트를 만드는 대회다. 우승자에게는 4000유로, 1년 동안의 대통령궁 바게트 납품권, 그리고 장인의 칭호가 수여된다. 매력적이다. 바게트 한 가지만 잘 만들면 장인이 될 수 있는 도시가 파리다. 왜 그들은 다양한 빵, 달콤한 빵, 프랜차이즈 빵이 아닌 이름 없는 동네 빵집과 서민 빵에 관심을 둘까. 아마 그들만의 '개성 키우기' 방식이 아닐까.

빵에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소수의 의사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존중되는 사회, 남을 따라 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지켜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들만의 스타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극도로 황폐화되고 있다. 인간 승리와 작은 감동들도 간간이 전해지지만, 매일 매일이 놀람과 탄식의 연속이다. 우리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 엄청난 잘못된 길에 들어 서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 크고 센 것만을 추종하는 우리 자신이 문제의 근원이라 여겨지지 않는가. 강하고 큰 것을 선택할 때 발생할 약자들의 피해에는 관심이 없는, 나만 아니면 되는, 왜곡된 주류(主流)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우리 때문은 아닌가.

문제 해결의 키는 내가 아닌 남이 먼저이고 같음이 아닌 다름을 더 인정하는 사회를 만드는 길뿐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작은 것, 약한 것, 소외된 것, 적은 것들이 크고 강하며, 많고 높은 것들과 조화롭게 공존할 것이다.

또한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인정(認定)의 손을 먼저 뻗고 작고 약한 것을 진실된 마음으로 감싸는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날 것이다. 그 결과, 현시대에서 필요치 않거나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직업과 사업 아이템들이 등장할 것이다. 문어발식 대기업만이 아닌 작고 강한 그리고 창의성이 돋보이는 사람들이 신바람을 낼 것이다.

다름을 지향하는 개성이 한없이 빛나는 사회, 일관된 언행일치의 삶 속에서 다름의 추구가 상식으로 여겨지는 그런 세상에서 이젠 살고 싶고 또 좇고 싶다. 그립다. 진정으로.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