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깨지는 원인은 많다. 가수 김건모는 여자 때문에 친구를 잃는 아픔을 적나라하게 노래했다. "너를 믿었기에 내 친한 친구를 소개시켜 줬고…." 사랑도 우정도 떠나갔다. 돈이 우정에 흠집을 내는 일도 허다하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그런 일을 당했던(?) 모양이다. 이런 하소연을 남긴 것을 보면. "돈 빌려 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돈을 빌려줌으로써 친구를 잃기는 쉽다."

모시는 주군이 다른 관계로 우정이 등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박선호와 정인형은 해병대 동기로 절친한 친구. 1979년 10월 26일 운명의 그날 밤 궁정동 안가에서 둘의 우정은 파경을 맞았다. 박선호 중정 의전과장이 정인형 청와대 경호처장을 사살했다.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 중정 부장의 총성이 울린 직후의 일. 박선호는 정인형에게 총을 겨누면서 "같이 살자. 제발 다 같이 살자"라며 대항하지 말 것을 애원하다시피했다고 한다. 우정이냐, 상관에 대한 충성이냐의 기로에서 갈등과 고뇌가 총성에 뒤범벅된다.

지금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과 금태섭 변호사의 '엇갈린 우정'도 굳이 변명하자면 그런 부류다. 박근혜 진영에 몸담고 있느냐, 안철수 측근이냐에서 발생한 한 편의 웃지 못할 코미디다. 정준길은 '친구 사이'에 얼마든지 가능한 전화 통화라고 주장하고, 금태섭은 '친구 사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서울대 법대 86학번 동기라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주군을 위해 25년 우정을 난도질하고 있다.

2001년 영화 '친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이유는 아마도 친구가 없는 시대, 우정이 말라버린 삭막한 시대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을까. 배우 유오성의 극중 대사가 아직도 귓전에 머문다.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관중과 포숙아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군주를 섬겼다. 그럼에도 둘의 우정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포숙아가 끊임없이 자신을 관중보다 낮추며 관중의 진가를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우정,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세상에 장작불에 사나흘 푹 고은 사골 국물 같은 우정이다. '친구'를 생각하게 하는 어수선한 가을의 문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