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 부산행 KTX 열차가 그제 오후 부산 금정터널 구간에서 전기장치 결함으로 갑자기 멈춰 서면서 200여 명의 승객이 1시간20분 동안 가마솥 같은 더위와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었다. 20.3㎞에 이르는 국내 최장터널 안에서 수백 명의 승객이 오도 가도 못한 채 객실에 갇혀 있는데도 사고 차량이 견인될 때까지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탈진과 탈수 증세를 보인 승객들을 제외하고 큰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열차가 금정터널 안에서 정지하자 KTX 측은 "차량에 이상에 생겨 잠시 확인 작업을 한다"는 등의 간단한 안내 방송을 하고 냉방장치를 포함한 모든 시설의 전기공급을 차단했다. 비상등만 켜진 암흑 상태에서 1시간 넘게 영문도 모른 채 방치돼 있었으니 승객들의 불안감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곧바로 119가 출동해 노약자들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고, 필요하다면 피신을 서두르는 게 상식적인 대응조치가 아닌가.
하지만 코레일 측은 사고가 발생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부산시소방본부에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체 대응한다고 사고 사실을 알리지도 않은 채 시간만 지체한 것이다. 코레일 측 대응은 고장 열차를 부산역으로 견인하기 위한 구원열차를 사고 발생 후 40분 만에 현장에 보낸 것이 고작이었다. 안전의식이 더위를 먹어 마비된 것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KTX 개통 이후 정차 사고는 셀 수 없을 만큼 다반사로 일어났고, 금정터널 내 사고만 지난해 이후 벌써 네 번째다. 중대 결함이 있는데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니 KTX는 빠르고 편리해서라기보다 안전을 포기한 채 타는 고속철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되는 것 아닌가. 이번 사고는 열차 설비나 장치 결함 못지않게 사고 대응 시스템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레일은 정작 승객을 가장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직원들의 안전불감증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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