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선택해 꿈 펼칠 수 있도록
우리나라 청소년의 하루평균 공부시간이 8시간55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5시간 안팎인 다른 나라 청소년들에 비해 3시간이나 공부를 더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학업성취도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공부시간이 우리 청소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핀란드 아이들의 성취도가 오히려 더 높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등을 토대로 청소년 핵심역량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아이들의 지적 역량은 36개 나라 가운데 두 번째였지만, 학습흥미도나 자기주도학습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과 관계지향성 영역에서는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우리 청소년 역량의 불균형은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과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가져온 결과로, 우리 교육의 억압적 환경을 잘 보여 준다. 학습시간이 길수록 성적이 높아질 것이라는 어른들의 잘못된 신념이 자식들에게 '묻지마 공부'를 강요하면서 억지학습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로 만들 수 있을까,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잡아둘 방법은 없을까, 오늘 한국사회 부모들의 공통적 고민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성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입시중심의 교육과 그에 따른 무한경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식 성적에 대한 부모들의 도 넘은 집착이 아이들에게 과도한 학습을 강요한다.
강요된 과도한 학습은 청소년들에게 공부가 지적 탐구의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억압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실제 우리 청소년들은 학업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 OECD 국가 아이들 가운데 햇볕을 쬐는 양과 운동량이 가장 적은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고, 수면량이 모자라 잠 부족에 시달린다. 한창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될 청소년기에 어른들의 일방적인 공부 강요는 아이들의 정서적 불안을 부르고 육체적으로 나약하게 만든다. 인성교육도 감성교육도 팽개친 채 공부기계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사회성이 떨어지고 행복지수가 바닥을 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기성세대의 자식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청소년들을 억압하며 약육강식의 경쟁 속으로 몰아넣는다. 방과후학교나 자율학습 또한 과열된 경쟁과 어른들의 빗나간 교육관의 산물이다. 공교육의 정상화 등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과도하고 강요된 학습이란 원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런 가운데 부산시의회가 방과후학교나 보충수업 참여를 학부모와 학생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학습선택권' 조례 제정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다. 열악한 교육환경의 개선을 도모하는 일로 늦은 감이 있지만, 예상 밖의 반대에 몰려 벽에 부닥친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 5월 시의회를 통과한 학습선택권 조례가 상위법과 충돌하고 학교운영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부산시 교육감의 재의결 요구로 공포되지 못했다.
이번에도 재상정을 앞두고 일부 학부모단체와 교사단체가 반대의 기치를 들고 나섰다. 물론 이들이 반대 이유로 내세우는 교육의 양극화나 사교육비 증가 우려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장시간에 걸쳐 아이들을 학습의 고통에 옭아매는 비이성적 행태는 개선돼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방과후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이 여럿이 뭉쳐서 거리를 배회하게 될 것'이라는 반대 이유 속에 아이들을 우리 속에 가둬 사육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교실에 가둬 놓을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서로 다른 개성을 살펴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청소년들의 꿈이 강요된 공부에 의해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어른들은 무모한 욕망을 내려놔야 한다. 비효율적인 결과가 예견되는 데에도 아이들을 교실에 몰아넣어 관리하겠다는 게 교육을 포기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몇 해 전 서울을 찾았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하루 15시간씩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는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빗나간 우리의 교육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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