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미국 워싱턴에서 미중 전략경제대화(S&ED)가 열렸다. 이른바 G2회의. 이 자리에서 미국은 중국에 최상의 아부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맹자 진심(盡心)편의 '산중의 좁은 길도 계속 다니면 길이 나고, 다니지 않으면 풀이 우거져 막힌다' 구절을 중국어로 읊었다. 이어 힐러리 국무장관은 오월동주(吳越同舟), 가이스너 재무장관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역시 중국어로 이야기했다. 이처럼 국가 간의 관계에서 상대국의 언어로 인사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대부분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라시에르다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이 지난 4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에게 '샤오신이디앤'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샤오신이디앤(小心一点)은 '조심하라'는 뜻의 중국어. 필리핀이 중국과 분쟁 중인 남중국해 해역에 미군 정찰기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중국이 불쾌감을 표현하자 중국어로 경고성 발언을 던진 것이다. 앞서 중국 환구시보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모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필리핀 베트남 등을 모기에 비유하는 무례를 저지른 바 있다.
필리핀인의 기개는 전통인 듯. 초대 외무장관 카를로스 로물로(1899~1985)는 1948년 파리 유엔총회에서 소련 대표단의 제안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련 대표단 비신스키 단장은 항의하는 로물로를 '작은 나라에서 온 꼬맹이'라며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로물로가 한방을 날렸다. "다윗의 의무는 약자를 괴롭히는 골리앗의 눈퉁이에 진실의 돌을 던져 올바르게 처신하게 하는 것이다." 비신스키는 찍소리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을 '모기'라고 비하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결코 그럴 입장이 아니다. 1979년 중국은 만만하게 보고 베트남과 국경분쟁을 벌였다가 호되게 깨졌다. 중국이 열강에 난도질 당하던 19세기말 필리핀은 식민통치국 스페인을 몰아내고 제1공화국을 수립했다. 미국도 비위 맞추기에 바쁜 오만방자한 중국에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는 대변인을 가진 필리핀이 부럽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조심하라'가 아니라 '노(NO)'라는 말조차 못하는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