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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예술가 복지를 생각한다 /이택광

고흐·고갱, 아를서 예술가공동체 추진…물질적 조건 이견 탓 끝내 실패로 돌아가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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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6-20 20:09:50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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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과 고흐는 미술사를 수놓는 흥미로운 친분 관계로 관심을 끈다. 인상파의 미학과 다른 입장에서 후기인상파라는 새로운 미술운동을 만들어낸 두 화가는 1887년 남프랑스의 아를이라는 곳에서 9주간 함께 생활하면서 예술가 공동체를 꾸리고자 했지만, 결과는 끔찍한 파국이었다.

둘을 의기투합하게 만들었던 것은 인상파의 미학을 극복할 대안에 대해 함께 고민했기 때문이다. 아를에 반 고흐가 마련한 노란 집에서 기거할 초창기에 이들을 사로잡은 것은 미학적 혁신이라는 공동의 대의였다. 아를 시절에 그려진 '밤의 카페'는 같은 화제를 이들이 어떻게 다르게 그렸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카페는 고갱과 반 고흐가 식사를 해결하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반 고흐 카페라는 명칭으로 바뀌어서 관광명소가 되어 있지만, 이들이 아를에서 함께 살 당시에는 아를의 주민들이 찾아들던 평범한 카페였다. 이른 아침에 아를에 도착한 고갱이 노란 집으로 향하기 전에 가장 먼저 들른 곳이 이 카페였다. 이 카페의 주인은 지누였고, 이 주인의 부인 또한 고갱과 반 고흐가 즐겨 그렸던 모델이었다. 지누 부인은 두 화가의 그림에서 '아를의 여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아를의 여인이라는 말은 당시 파리의 화가들에게 '시골 아낙'을 의미하는 중요한 기표였다. 시골 아낙에서 느낄 수 있는 순박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를의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파 화가 드가가 아를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의미는 원시적 생명력을 발산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를의 여인을 즐겨 그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갱과 반 고흐는 아를에서 파리의 미술계와 다른 무엇을 이루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고갱은 '밤의 카페'에서 개인의 고독한 존재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아를의 여인을 상징하는 지누 부인이 전경을 차지하고 있지만, 뒤쪽에 보이는 담배연기와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는 인물이 이런 느낌을 강화시킨다. 생활고와 불안한 미래에 쫓겨 아를로 올 수밖에 없었던 불안한 고갱의 심정을 잘 드러낸 것이 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갱의 그림과 비교해서 반 고흐의 '밤의 카페'는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 그림을 구성하는 시선은 '취객'의 것처럼 보인다.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취한 화가 자신이 바라본 카페의 풍경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두 그림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정서를 고독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고갱보다 반 고흐가 더욱 극적으로 내면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고갱이 계획적이고 자기 방어적이라면 반 고흐는 흔들리는 자아를 아무런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고갱이 면의 분할과 색조의 조절을 통해 정서를 전달한다면, 반 고흐의 그림은 내면에 들끓는 열정과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에서 두 화가의 갈등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지 않고 있었던 '그날,' 반 고흐는 아를을 떠나려는 고갱을 붙잡겠다는 절박한 심정에 그만 통제력을 잃고 만다. 알려진 사실대로, 그는 자신의 귀를 잘라서 고갱에게 보내려고 했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반 고흐가 이런 행동을 했는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이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오직 고갱 자신의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란히 아를의 카페와 여인을 그린 고갱과 반 고흐는 자신들이 꿈꿨던 우정의 공동체를 제대로 꾸리지 못했다. 고흐가 꿈꿨던 것은 화가들의 협동조합이었다. 고갱은 고흐의 생각에 크게 동의하지 않았지만,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에 아를에 올 수밖에 없었다. 동상이몽이었기 때문에 이별은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것이다.

예술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개인의 탁월함도 중요하겠지만, 예술가들을 생존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도 필요할 것이다. 고흐는 홀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고흐와 고갱의 일화는 비록 실패담이긴 하지만, 예술가 복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가다듬게 만든다.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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