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을 방문했다. 수명이 다한 월성원전 1호기와 고리원전 1호기의 안전점검을 해달라고 한국수력원자력이 요청해서 방문한 것이다. 고리 1호기 정전사고 은폐가 발각된 이후, 연이은 비리와 부실이 확인된 가운데 바닥으로 추락한 핵산업계의 자구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IAEA의 권위를 빌려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과 고리 1호기 재가동의 면죄부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IAEA의 면죄부 발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굴업도 핵폐기장 논란 당시인 1995년, 경주 핵폐기장 부지 선정 당시인 2005년, 그리고 고리 1호기 수명 연장을 결정할 당시인 2007년에도 그들은 한국을 방문했다. 그 어느 때도 IAEA는 한국의 원전과 핵폐기장 부지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굴업도 핵폐기장 부지는 활성단층 발견으로 취소되었고, 하루 3000여 t의 지하수가 쏟아져 나오는 경주 핵폐기장 부지는 애초 30개월이었던 공사기간이 세 차례 연기되면서 84개월로 늘어났다. 경주 핵폐기장이 완공될지는 미지수다. 원자력안전규제 당국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경주 핵폐기장이 완공된다고 하더라도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사일로가 지하수나 바닷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고리 1호기는 어떠한가. 국내 전체 원전사고와 고장의 20%가 집중된 고리 1호기는 IAEA로부터 안전점검을 받은 지 5년 만에 비상 디젤발전기 두 대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켜 초유의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안전점검을 하면서 '문제 없다' '안전하다'고 했던 IAEA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오류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다. 최소한의 사과조차 없는 이들이 또다시 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의 안전점검을 할 자격이 있는가.
IAEA의 안전점검 후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전점검의 내용이 원전 전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한 이번 점검은 '조직행정 및 안전문화, 운전, 정비, 운전경험 등 4개 분야'에 불과하다.
만약, 월성 1호기나 고리 1호기에서 IAEA가 예측하거나 점검하지 못했던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면 IAEA는 무슨 책임을 져야 할까. 책임질 것이 없다. IAEA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면죄부를 발행한 대가로 약간의 경비를 챙길 뿐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근 주민 15만 명이 피난했다. 반경 30km 이내뿐만 아니라 사고 당시 바람이 북동쪽으로 불어 북동쪽 50km 지역까지 피난구역이 되어 버렸다. 고리원전 1호기에서 반경 25km 내에 부산시청과 울산시청이 있다. 후쿠시마 경우처럼 어느 한쪽으로 바람이 분다고 가정한다면 부산시와 울산시 전체가 피난구역이 될 수 있다. 부산시 360만 명, 울산 110만 명이 피난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부산으로 바람이 불었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 이들이 피난하지 않으면 급성사망을 포함해 50여 년간 암으로 사망하는 이들이 90여만 명에 달할 수 있다.
IAEA는 이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부산· 울산시민, 한국민들의 불행일 뿐이다. 우리의 안전을 IAEA가 아닌,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양이원영·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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