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내 집을 장만하는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평범한 꿈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로 부모 도움 없이는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꿈이 되어 버렸다. 캥거루족이라는 신조어가 바로 이러한 사회현상을 반영한다.

캥거루족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일본에서 등장했고 2004년부터 한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캥거루족은 대학을 졸업한 후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 취직을 하지 않거나 직업을 가져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 층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20대 후반이 되도록 직장 없이 부모에게 의탁해 살아가는 젊은 층을 트윅스터(Twixter)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금을 축내는 키퍼스(Kippers), 독일에서는 집에 눌러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네스트호커(Nesthocker), 캐나다에서는 직장 없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로 부른다.

이런 신조어를 보면 나이 든 부모에게 얹혀사는 성인 자녀의 등장은 비단 일본과 한국만의 특이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캥거루족은 비싼 대학등록금, 취업난, 오를 대로 올라버린 대도시의 주거비 및 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와 이를 지켜보자니 근심이요 하나라도 더 베풀어주면 자녀가 더 잘될 것 같아 욕심을 부린 부모세대의 합작품이다.

서구에서도 캥거루족이 늘었다고 하지만 미국의 경우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만 18세 이후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자녀는 3명 중 1명에 불과하며 30대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30·40대의 중년 캥거루족이 300만 명에 이르고 35~44세 남녀 6명 중 1명이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중년 캥거루족 통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가족과 관련된 새로운 현상은 한국이 일본보다 조금 늦게, 그러나 더 급속하고 맹렬하게 사회 전체를 강타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의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결혼한 자녀를 신혼여행 보내고 부모가 바로 이혼 절차를 밟는다고 해서 '나리타 이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이 1990년이었고, 몇 년 뒤부터 한국에서도 중년기 이후의 황혼이혼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저출산 현상, 고령화 현상 역시 일본이 한국보다 한 발짝 앞서 나타났고 한국은 맹렬히 일본을 추격하다가 더 심각한 양상으로 귀결됐다. 이는 한국의 다이내믹한 정치 사회적 변화 탓도 있겠지만 두 국가 모두 가족주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을 짰지만, 일본이 한국보다 더 촘촘하고 안전한 망을 갖추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속도나 강도가 어느 정도 제어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2011년 들어 우리나라의 구직 포기 청년층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이웃 나라의 중년 캥거루족 현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편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일본의 캥거루족은 국민연금, 후생연금과 공제연금, 개인연금까지 3중으로 연금보장을 받는 부모세대에 기댄다. 반면 한국의 캥거루족은 노후준비조차 부실한 부모세대에 의지한다. 최근 들어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와 임의가입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국민연금에 가입한 비율은 정규직 76.0%, 비정규직 41.8%에 그치고 있다. 200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노후준비를 하지 못하는 비율이 33.7%이고 이 중에서 자녀에게 노후를 의탁하겠다는 비율도 12%에 달한다. 젊은 세대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부모세대의 미래는 불안하다는 의미다.

부모와 자식 모두 대학졸업을 이상적 자립 시점으로 기대한다. 기대처럼 되려면 대학 시절부터 등록금이나 용돈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워밍업이 필요하다. 올해부터 반값 등록금을 실시한 서울시립대는 등록금 이야기만 나오면 재학생과 부모들의 얼굴이 환해진다고 한다. 인생의 멀리뛰기와 높이뛰기를 앞둔 청년층에게 반값 등록금처럼 도움닫기 역할을 하는 정책의 도입이 절실하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이 온전한 자립을 꿈꾸는 캥거루족과 그 부모들의 멍든 가슴처럼 유난히 붉어 보이는 5월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