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대표 건축물 탄생

- 양자 균형 유지서 비롯

최근 영화 '건축학개론'이 300만 흥행을 돌파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첫사랑과의 추억을 바탕으로 건축 설계의 기본지침인 장소성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함축적이고 서사적으로 담고 있고 "우리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처럼 서로가 상처받기 두려워 끝내 완성되지 못한 만남으로 끝을 맺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관점을 달리해보면 남자 주인공인 건축가와 여자 주인공인 건축주의 관계이다. 물론 영화 내용상 설정이지만, 15년이 지나 무턱대고 찾아가 집을 지어 달라 하는 건축주와 자신 없어 하는 건축가의 관계가 현실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대부분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한 건물을 짓는다는 행위는 일생일대의 큰 용기가 필요하며 10년 늙을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집 짓는 일은 힘든 일이라고 한다. 가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 좋은 집을 지으려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경제적 문제로 상충할 때 서로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현실적 경험이 있지만 건축주는 잡지나 기타 정보지 혹은 지인으로부터 얻은 정보로 인해 이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건축가는 이러한 현실과 이상을 좁혀나가는 조정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비전문가를 전문 지식을 통해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건축주가 존재해야 건축가가 존재하듯 건축주의 요구에 맞춰 결과물을 낼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축적 경험과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주변 산세와 땅의 맥락 등을 살펴 그곳에 거주하게 될 건축주의 취향과 주변 상황과의 조화를 고려하고 시공자 등과의 대화를 통해 꼼꼼한 관심을 둘 때 좋은 건축물이 탄생한다.

많은 건축가의 꿈은 높은 가격이나 규모가 아닌, 좋은 건축주를 만나는 것이다. 좋은 건축주는 건축가의 신념과 철학에 신뢰를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때론 건축가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앞에서 언급한 성향이 있는 건축가와 건축주가 만나면 단지 좋은 건축물이 아닌, 훌륭하고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할 가능성이 열린다.

현대 사회에서 건축가와 건축주의 이상적인 모델은 안토니오 가우디와 꾸엘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가우디는, 당시 주류였던 네모난 건축물을 과감히 탈피해 풍부한 색과 모양으로 독창적인 건축물을 설계했다. 사람들의 극단적인 평가에 시달렸지만 본인의 신념을 타협할 줄 몰랐던 이 천재 건축가는 주위의 숱한 비판을 무릅쓰고 많은 세계적인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무한한 신뢰와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건축주 꾸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이러한 꾸엘을 위해 가우디는 꾸엘 공원을 설계하고, 이 공원은 바르셀로나의 관광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많은 가우디 건축물들의 대표작으로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경제적 파급 효과까지 가져다주었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이라 불리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친구인 카우프만 일가를 위한 주말 주택으로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한 역작이다. 1936년에 지어진 폭포 위의 이 집은 얇은 콘크리트와 유리 계단 등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그러나 정작 건축주는 폭포소리에 불면증을 호소하고 홍수가 나면 건물 안의 바닥과 가구는 물에 잠겼다. 연 15만 명 관광객이 다녀가는 이 유명한 건축물은 건축 당시 건축주는 폭포를 바라보고 지어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건축가는 폭포 위에 집을 짓게 되었고 콘크리트 두께를 가지고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켜 세계적인 건축물로서의 명성 뒤에 소송으로 얼룩진 일화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좋은 관계의 지속은 균형이 핵심이다. 건축가나 건축주, 한쪽으로만 권리나 이익이 치우치면 비용과 관계없는 뻔한 건축물이 완성된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탄생은 이 둘 사이에 균형이 유지되는 경우에 탄생한다. 시가 건축주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건축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들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건축가는 건축주의 요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고자 설득과 이해를 구해 내야 한다. 성공적인 문화적 공간은 창의성과 함께 건축가와 건축주가 균형 잡힌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 탄생한다.

건축가·디자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