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필요성 이해해야
'목멱산 아래 이런 선비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선인들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지만 그래도 동·서·남쪽 삼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행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대하게 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고는 했기에, 집안사람들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看書癡】'라 불렀지만, 그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자신을 간서치라 칭했으나 그보다 지독한 독서광도 있었다. 조선 중기 시인 김득신(1604~1684)은 자신이 책을 읽은 횟수를 기록한 '독수기'를 남겼는데, '사기'의 '백이열전'을 1억1만3000번 읽었다고 썼다. '사기'는 전설의 오제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까지 3000년 역사를 다룬 사마천의 책이다. '백이열전'은 사기의 열전 70편 중에서 첫 번째 편으로 전문은 모두 792자이다.
아무리 독서광이라지만 1억1만3000번이라니. 이에 대해 역사학자 이덕일 씨가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당시의 1억은 10만을 가리키니 이는 11만3000번 읽었다는 뜻이다. 그는 정약용을 빌려 독서를 잘하는 선비라면 하루에 100번은 읽을 수 있고, 이를 1년으로 환산하면 3만6000번, 그러니 3년이면 10만8000번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온종일 '백이열전'만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니 족히 4년은 걸렸을 것으로 봤다. '백이열전'은 백이·숙제의 의로움과 양보라는 명분주의와 도덕적 정신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하니 김득신은 시쳇말로 이에 필이 꽂혔을 터이다.
'독서의 해'를 맞아 이들의 행적을 곱씹으니 우리 현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무슨 해니, 무슨 날이니 하는 것들이 하도 많아 도대체 '독서의 해'는 또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서의 해 부제가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란다.
지난해 2월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인터넷, 영상매체 등 뉴미디어의 영향으로 국민 독서율이 하락하고 있다.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독서의 해 지정 방침을 밝혔다.
그의 발언이 있기 직전 우리나라 성인의 35%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등 독서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0년 11∼12월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과 초중고교생 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10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이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율은 2009년보다 6.3% 감소한 65.4%였다. 이는 만화, 잡지를 제외한 일반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비율이 성인 10명 중 6.5명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독서 삼매경은 옛말이 되어버렸고, 사무실에선 인터넷 삼매경, 지하철에선 스마트폰 삼매경이 현실이다.
하지만 독서의 해를 통해 범정부적으로, 전국적으로 독서 분위기를 높이고자 하는 거창한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태산명동 서일필'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고, 지자체 차원의 독서 장려 운동도 시민의 호응을 얻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인터넷에서도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독서의 해 홈페이지'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지난 연말 '독서의 해'를 앞두고 열린 독서문화 관련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아너 플레처 알드리지 재단 대표는 무조건 읽으라고 하기 보다는 맞춤형 독서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훈수를 뒀다. 그는 2008년 영국에서 독서의 해 운동을 주도했다.
이덕무는 책을 읽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손만 뻗으면 어디서든 책을 구할 수 있는 시대, 하지만 오히려 책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시대, 구호가 아니라 책이 필요한 이유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진중하고 꾸준한 '책의 해' 사업을 기대한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