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해 있으나 우리의 앞길은 아직도 멀다. 세계 경제의 불황, 에너지 자원의 고갈, 지구 환경의 파괴와 기후 변화 등 여러 어려운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선진국을 따라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과학기술과 운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 국민의 염원인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도 경제 규모에 걸맞게 빨리 나와야 하겠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도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게 된 1990년대 후반부터 많은 연구비를 과학 분야에 투자하고 있고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출연 연구소도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된 이후 국방과학연구소, 전자통신연구원 등 현재 많은 연구소들이 생겨 각 분야에서 국가의 미래에 필요한 중요한 연구들을 하고 있다. 기업체 연구소도 삼성, 현대, LG 등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는 대기업체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고 대학 연구소에서도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국가 전체로 보면 국민총생산에 비추어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는 있으나 국가가 내세울 수 있는 세계 일류 기초원천기술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연구소들은 크게 정부출연 연구소, 기업체 연구소와 대학 연구소로 나눌 수 있으나 요즈음 이들 연구소의 기능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정부출연 연구소는 단기간의 이익보다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미래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을 예측하여 장기적인 연구를 주로 해야 하고, 기업체 연구소는 기업체의 미래가 걸린 장기적인 연구도 필요하지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를 많이 해야겠고, 대학 교수나 대학 연구소에서는 주로 기초적인 이론에 입각한 기반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이들 연구소의 역할이 서로 너무 많이 중복되어 있는 실정이다.
만일 정부출연 연구소가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수립하여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핵심기술을 예측하여 미리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위성발사체인 나로호의 두 번 실패로 뒤늦게 독자적인 1단계 발사체를 개발해야 하는 실수가 다시 재연될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국가의 많은 연구비를 이러한 연구소나 대학 등에 어떻게 배정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구비의 효율적인 사용과 결과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다.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어 반영하는 것도 좋지만 연구기관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면 국방, 항공우주 등 국가의 주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연구 성과 평가에서 논문발표와 학술지에 게재, 특허 출원 등이 주요 성과에 포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IBM 연구소에서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연구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려지게 되므로 연구성과를 발표하거나 학술지 게재를 장려하지 않는다.
또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가 '성공이냐, 실패이냐' 의 성과 위주로 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패를 하더라도 열심히 착실히 연구한 결과가 그렇다면 실패도 용인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거울삼아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여 다시는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끝내는 성공으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성공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계속된다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꺼리고 안전한 길만을 찾거나 이미 성공한 여러 방법들을 적용하는 풍토를 만들게 될 것이다. 연구비를 배정할 때 이러한 실패에 대한 부분도 고려해 연구계획서 평가에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국가에서 시도되지 않은 다소 무모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디어도 용납될 수 있는 연구풍토가 되어야만 한국이 선진국으로의 진입이나 우리가 염원하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도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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