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내 눈에 갑자기 /이상섭

취객 신고한 뿌듯함, 안전조치 취한 경찰에 대한 듬직함…어깨가 절로 으쓱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4-20 19:51:23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이른 아침부터 아내가 연둣빛 새순 같은 웃음을 피워 물었다. 이 여편네의 가슴에도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건가. 부러 나는 모르는 척했다. 그랬는데 밥숟갈 놓기 무섭게 은행에 송금할 일이 있다며 옆구리를 간질이고 나서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이유 없이 '썩소를'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가시긴 했지만 그렇다고 살 맞대고 사는 사이에 그만한 일에 강짜 부릴 것도 없었다. 해서 이왕 출근기사 노릇하는 김에 조금 일찍 나서기로 작정하고 현관을 나섰다.

은행 앞에 아내를 내려주고 정차하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여고생이 까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시선을 돌렸다. 순간 칼 맞은 수박처럼 내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웬 사내가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마치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저승의 문지방을 넘어가버릴 것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냅다 차문을 열고 달려갔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이람. 사내의 바지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져 거웃이며 거시기까지 온통 드러나 있는 상태가 아닌가. 아니, 사람들 많이 오가는 길바닥에서 아랫도리까지 일광욕시키고 있다니. 이봐요, 여기서 왜 그러고 있어요? 괜찮아요? 사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보내는 신호라고는 신음이 전부였다. 바짓단으로 손길을 뻗던 나는 그만 코를 싸쥐고 말았다. 사내의 몸에서 문뱃내가 물씬 풍겼던 것이다. 뿐인가. 바지에서 오줌 버캐냄새까지 피어났다. 순간 나는 잠시 우두망찰할 수밖에 없었다. 앉을 자리며 설 자리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취객 하나 때문에 아까운 시간 허비한다는 게 마뜩잖았던 것이다.

하지만 저 은밀한 우리들의 귀한 남성 생식기까지 세상에 공개한 상태로 돌아서기에는 좀 그랬다. 아저씨, 보아하니 제법 취하신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 테니 바지라도 우선 좀 올립시다. 다시 손을 갖다대는 찰나였다.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눈을 부라리고 노려보는 게 아닌가. 꼴이 여차하면 벌떡 일어나 뺨이라도 칠 기세였다. 네가 뭐야? 네가 뭔데 간섭이야! 사내의 입에서 터진 그 다음 말은 더 가관이었다. 무슨 길바닥에 과일 씨가 있다고 '씨 봐'를 연거푸 읊어대는 건지. 어이가 없어 웃음만 터졌다. 그런 와중에서 사내의 목구멍에서는 아직 간밤의 소주병 뚜껑이라도 걸려있는 것인지 연신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기 바빴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은행의 볼일을 끝낸 아내가 다가오다가 소리쳤다. 사내는 언제 소리쳤느냐는 듯이 다시 조용히 몸을 떨고 있었다. 사내의 기특한 연기실력에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냥 가, 출근시각 늦었어! 아내의 채근에 그냥 돌아서려 했다. 한데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핏줄기가 보이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휴대전화가 울었다. 학장동파출소인데요, 출동해서 확인해도 부국할인마트 옆의 농협은 없는데, 혹시 위치를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상터미널 근처로 가다가 농협을 발견하고 서서 신고를 한 거라고 자초지종을 다시 얘기하자 수화기 안에서 아, 하는 소리가 터졌다. 거기라면 학장동이 아니고 감전동이네요. 곧 조처하겠습니다. 휴대전화는 다시 고요함에 빠졌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린 건 직장 가까이 왔을 때였다. 감전동파출소 박 순경입니다. 신고해주셔서 감사하고요, 현장에 출동해 모든 안전조치를 다 취했습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취객 이름이며 저간의 행적까지 언급하는 것이었다. 그 양반은 아내를 잃고 자식 하나 없이 혼자 사는 처지라고 했다. 어쩌면 그게 하루 일당을 술로 몽땅 바꿔먹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더 철저히 고립시킨 건 누구였을까. 악수를 건네면서도 정작 손은 내밀지 않는 우리는 아니었을까.
전화를 끊은 후에도 취객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박 순경의 혀 차는 소리까지도. 내가 나서도 될 일을 경찰서에 신고정신을 발휘한 게 '살짝' 미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신고전화를 제대로 처리해준 경찰에 대한 듬직함에다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절로 휘파람이 터지고 어깨가 으쓱거렸다. 거리에 순찰차도 많아 보였다.

소설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동서대 강승우·장희진·천민주·홍예진, 파크랜드 대학생 마케팅 공모전 최우수상
  2. 2부산과기대, 노인 대상 뉴-시니어스쿨 교육생 모집
  3. 3근교산&그너머 <1161> 경남 함안 백이산~숙제봉
  4. 4[서상균 그림창] 나보다 빠르다닛?!
  5. 5중국 청정지역 티베트도 의심환자…사망 132명, 확진 6000명 넘어
  6. 6나쁜놈 변신 대성공…“이젠 따스한 멜로 연기하고파”
  7. 7새벽 세시에 날 깨운 건, 목탁 아닌 마음의 소리
  8. 8이처문 국제신문 사장·임직원, 충렬사 참배
  9. 9김형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 “PK에 거명 안된 인물 대거 투입”
  10. 10여당, 부산 북강서을 공천 ‘친문 VS 친문’ 대결 주목
  1. 1 국방부, “통합신공항 이전부지 ‘의성·군위’로 사실상 결정”
  2. 2안철수, 바른미래당 탈당…독자 행보
  3. 3원종건 데이트폭력 피해자 "사과없는 사퇴 억장 무너진다"
  4. 4손학규 '안철수 비대위' 거부…"전권 준다 약속한 적 없어"
  5. 5민주당 "청년신혼 맞춤형 주택 10만호 공급"
  6. 6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4월 1일부로 잠정 무급휴직 통보”
  7. 7 국방부, 의성 비안·군위 소보로 대구 군공항 이전 추진
  8. 8이완구 전 국무총리 정계 은퇴…"새대교체에 기여하고자"
  9. 9 “비통한 마음” 안철수, 입국 열흘 만에 바른미래당 탈당
  10. 10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4월 1일부로 잠정 무급휴직 통보”
  1. 1탐험대 파견·교류로…남극 미래 경제영토 넓힌다
  2. 2‘딸기 바보’ 모여라…유통가 새콤달콤한 유혹
  3. 3롯데백화점 올 첫 매장 테마는 봄 대신 ‘우울증 해소’
  4. 4로이스 초콜릿 한국 매장 철수 “영업 종료한다”
  5. 5석유관리원, 아프리카 가나에 '석유제품 관리' 노하우 전수
  6. 6정부, 부산권역 해양에 8개 용도구역 지정
  7. 7농림축산식품부, 제3차 식생활교육 기본계획(2020~2024년)’ 수립
  8. 8국민 10명 가운데 4명 “일상 탈출과 휴식 위한 농촌관광 해봤다”
  9. 9토종 브랜드 블랙야크,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박람회 2관왕
  10. 10국세청 "고가주택 취득 관련 자금출처 전수 분석"
  1. 1동대구역 ‘우한 폐렴 환자 추격전’...알고보니 유튜버
  2. 2‘우한폐렴’, 어떤 마스크 써야 하나 고민된다면?
  3. 3WHO "우한 폐렴 무증상 감염자도 바이러스 옮길 가능성 있어"
  4. 4질병관리본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유증상자 21명 늘어”
  5. 5우한 교민 천안 격리설에 천안 시민 반발…"천안 시민 찬반투표라도 거쳐라"
  6. 6'울산 고래고기 사건' 이후 경찰-검찰 갈등 재조명…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에도 다른 태도
  7. 7부산시 ‘신종 코로나 ’의심 신고 전날 대비 7명 증가…‘확진자는 없어’
  8. 8 질병관리본부, “‘우한 폐렴’ 2차 감염 가능성 존재”
  9. 9일본인 귀국용 전세기 우한행…귀국 희망 일본인 650여 명 파악
  10. 10부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의심 증상자 1명 ‘음성’
  1. 1허훈 돌아오고 새 용병 가세…kt가 달라졌어요
  2. 2‘롯데맨’ 안치홍 “용병 마차도와 키스톤콤비 기대”
  3. 3임성재 등 PGA 코리아 브라더스, ‘골프해방구’서 시즌 첫 우승 도전
  4. 4남자 핸드볼팀, 아시아선수권 준우승…카타르에 21-33 패
  5. 5도쿄행 낭보, 여자 축구·농구가 잇는다
  6. 6야수 멀티포지션 실험…롯데 가을야구 향한 큰 그림
  7. 7“한국 남자 축구·여자 골프 등 도쿄올림픽 금메달 9개 예상”
  8. 8전국동계체육대회 부산대표단 결단식
  9. 9내년부터 WBC 본선 참가국 16→20개로 늘린다
  10. 10조코비치 vs 페더러, 30일 50번째 맞대결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다시 읽어보는 한 ‘분단인’의 삶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서독사람 동독사람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제1부두, 이왕 보존하는 김에 제대로
도시 규제의 경제학
기고 [전체보기]
지금 부산 연극은 산소호흡기가 필요하다 /손병태
문학지 ‘허와 실’에서 살아남기 /배재경
기자수첩 [전체보기]
CES는 가전박람회? /정옥재
문닫는 소극장 막으려면 현장에 귀기울여야 /민경진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영화 진흥은 영화관서 시작된다
‘소프트 에듀케이션’ 대안 교육은 꿈일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시립’과 ‘국립’의 앙상블
전통음악, 해설이 필요해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파워 반도체 허브’ 부산 기대 /이석주
시대정신 檢개혁 누가 저항하나 /송진영
도청도설 [전체보기]
도쿄의 전염병 위기
‘우환’ 바이러스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상월선원의 천막결사
내심(內心)의 소리 듣는 시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따끈한 쌀밥에는 명란젓
내겐 넘버원 대동할매국수
사설 [전체보기]
우한 폐렴 정보 사각도, 가짜 뉴스도 있어선 안 된다
우한 귀국 교민 철저한 대처로 불필요한 불안 없애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 지역사회도 나서라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한일 ‘투 트랙 외교’ 올해는 회복해야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죽기를 결심하고 그린 명작
모두가 받고 싶은 성탄 선물
이홍 칼럼 [전체보기]
한국 경제, 희망의 빛도 보인다
기생충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설 연휴 무탈하셨는지?
등 떠밀린 보수 통합 성공할까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나의 LP 이야기
핀란드의 찬가 ‘핀란디아’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의 소리
와인과 욕망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겸재 정선 ‘수박 서리하는 쥐’
격렬한 파도에 조선 정신을 담다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 청소년 남극 체험 선발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