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을 2주 앞둔 지난달 말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의 만 19세 이상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비율은 4년 전에 비해 5% 포인트 높아졌고, '총선에 대한 관심'은 6.5% 포인트 높아졌다고 한다.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정책과 공약'이라는 응답이 34.0%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인물과 능력' 30.8%, '소속정당' 13.8%, '주위평가' 7.6%의 순으로 나타났다. 정책과 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8년 전 15.2%, 4년 전 30.8%였다고 하니 선거를 거듭할수록 정책과 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정책과 공약을 살펴보고 후보를 선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소 정치와 선거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라고 해도 각 정당의 정책과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각 정당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19대 총선 공약자료집을 보면 일단 분량이 만만찮다. 새누리당은 총 120쪽, 민주통합당은 391쪽이고 통합진보당은 723쪽에 이른다. 그외 여러 정당 공약집들이 있다.
분량이 많더라도 정당별로 다른 점이 있거나 참신한 공약이 있다면 읽을 만할 것이다. 하지만 주요 정당의 19대 공약자료집을 프린트해서 대략 훑어보니 차이점이 거의 없다. 여성가족정책 분야의 공약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큰 틀에서 볼 때 4년 전에 비해 달라진 점은 주요 정당이 다문화가족이나 1인가구의 증가를 반영해 가족의 다양성을 존중하겠다는 것, 아이 키우고 공부시키는 것이나 노령자 부양 책임을 국가가 복지영역에서 좀 더 부담하겠다는 것이 눈에 띈다.
정당에 따라 여성가족정책 분야에서 차이점을 굳이 찾자면 새누리당의 공약은 보기 좋게 편집되어 읽기 편하지만 맞춤형 여성 일자리정책만 눈에 띌 뿐 전체적으로 내용이 빈약하다. 민주통합당은 현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의 일자리, 건강, 성평등 정책 등을 고루 짚었지만 인상적인 대표공약이 없다. 통합진보당은 19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약속했다기 보다 진보정당의 목표와 방향을 정리한 것으로 그 노력은 가상하지만 실현가능성이 의문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부산에서 있었던 몇 차례의 선거결과를 보면 특정 정당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당선이 보장되는 정당의 후보가 되기 위한 예선이 유권자가 선택하는 본선보다 치열했다. 그러니 후보도 유권자도 정책과 공약에는 신경을 덜 썼다. 이런 선거풍토를 만든 일차적 책임이 정당과 후보에게 있는지, 유권자에게 있는지 가려내기는 어렵지만 이런 식의 선거가 반복되면 그 피해는 현재의 유권자와 아직 투표권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부산은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주목받고 있다. 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몇몇 선거구는 과거와는 달리 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정치평론가나 선거 관계자들은 정책과 공약이 중요한 선거는 국가 전체의 미래방향을 제시하는 대통령 선거나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라고 한다. 이에 비해 총선은 정책과 공약이 아니라 전국을 강타하는 태풍급 이슈와 바람이 부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번 총선도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직 투표일까지 9일이나 남아있다. 머슴이나 큰 일꾼을 자칭하는 우리 지역의 후보가 무슨 뜻과 의지를 가지고 출마했는지 유세장에서 후보연설을 들어보고, 텔레비전 토론을 시청한 후 판단할 시간이 충분하다. 신문에 실린 후보별 정책과 공약을 참고할 시간이 있다. 틈틈이 정당과 후보의 홈페이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열정과 소통능력도 눈여겨 볼 만하다. 무엇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개별 가정으로 보내주는 선거 공보물이 곧 도착할 것이다. 여기에 내 관심사가 반영된 공약이 있는지 시간을 내서 따져봐야 한다.
정당과 후보, 그리고 열정적인 지지자는 갈수록 이번 총선을 쟁점과 바람으로 뜨겁게 달구겠지만 그럴수록 유권자는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공동체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정책과 공약을 차분하게 살펴볼 일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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