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내 '영화의전당'을 찾는 것은 즐거움이다. 영화 애호가도 아니고 영화에 대해 남다른 심미안도 없다. 그렇지만 그곳에 가면 좋은 영화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간 위안이 아니다. 때로는 가족과, 친구와, 홀로 그곳을 찾는다. 그때마다 '내가 정말 영화의 도시에 살고 있구나' 하는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그것은 주머니 속에 선물을 넣고 다니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영화의전당이 한 달간 보수를 마치고 이달 초 일본영화제를 시작으로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지난 7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소극장과 시네마테크관에서 올해 첫 '씨네 리플레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씨네 리플레이는 시네마테크 부산 시절부터 시작된 부산의 대표적인 예술영화 상영 프로그램이다. 이번 씨네 리플레이에서는 2011년 개봉한 예술영화 중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스 반 산트, 테렌스 멜릭 등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엘리노의 비밀'을 보기 위해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중극장 넓은 공간에 우리 가족 4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이 영화를 감상했다. 그 전날 딸이 봤을 때도 관객은 5명 안팎이었다고 했다. '엘리노의 비밀' 뿐만 아니라 다른 개봉 영화의 객석 점유율이 저조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1678억 원을 들여 만든 공간에 사람이 이렇게 적어서야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개인은 호사할지 몰라도 비용은 엄청난 것이다. 누구나 '이것은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10명 안팎의 관객이 지켜보는 영화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아직도 영화의전당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부산시민들이 대다수이고 보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지난해 영화의전당 운영 연구용역 최종 발표 당시 연간 4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적자 규모는 아마도 더 컸으면 컸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40억 원이란 돈은 적은 것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부산 수영구 광안리 대안공간 '반디'가 문을 닫았다. 낡은 목욕탕을 전시실로 개조한 '반디'는 실험적 미술인들의 발표 공간으로 각광 받았다. 전국적 명성을 쌓았던 이 공간은 건물주의 요구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연간 40억 원이면 이런 단체와 예술인 상당수를 지원할 수 있는 돈이다. 운영자금이 없어 창작의 열정을 꺾고 스러져 가는 공간, 단체, 개인이 얼마나 많겠는가.
저조한 영화의전당 객석 점유율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BIFF 전용관 무용론도 타당한 측면이 있는 논의였다. 그러나 지금 건축물 자체가 관광 대상인 영화의전당은 부산의 랜드마크로 부족함이 없다. 앞으로 콘텐츠를 더욱 다듬는다면 전국적인 영화 아이콘이 될 수 있다.
부산국립극장 뮤지컬 전용극장 오페라 하우스 건립이 구체화되면서 다시 거대 문화 인프라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채울 내용도 없는데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하드웨어 구축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지을 수 있다면 짓는 것이 옳다. 담을 음식이 없더라도 그릇이라도 있으면 담을 음식도 생기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다만 정교한 기획과 콘텐츠의 중요성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부산도시 브랜드 3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해양문화, 영화영상산업, 도시재생 등이 3대 핵심전략 방향이다. 부산시가 문화를 도시 브랜드 핵심 전략 방향으로 설정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21세기의 키워드가 문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제대로 잡은 것이다. 그러나 정교한 기획력과 콘텐츠가 뒤따르지 않으면 이런 전략은 헛된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부산시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화 부시장 직책을 만들자는 것이다. 경제, 정무에 비해 문화부시장의 중요성은 떨어지지 않는다. 도시브랜드 핵심 전략방향이 문화라면 그에 걸맞은 조직 개편도 필요하다.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 인프라의 예산이 1조 원을 넘는다. 그 큰 그릇을 채울 것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부산시 문화예술 100년 대계를 디자인할 안목 높은 문화 부시장은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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