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사상구가 여성가족부와 여성친화도시 협약식을 체결했다. 그보다 앞서 2011년 2월에 북구 화명동이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는 전국 8개 가족친화마을 중 하나로 선정됐다. 여성친화도시는 여성은 물론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중심적이며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도시 발전모델이다. 가족친화마을은 이웃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마을 주민이 주체가 돼 일과 가족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하고, 아이 양육과 부모 부양의 책임을 개인과 사회가 분담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지향한다. 두 사업 모두 여성과 가족이 '안전 안심 안락'하게 생활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기존의 국비 지원사업과는 달리 하드웨어 확충보다 소프트웨어 구축에 주안점을 둔다는 점도 닮았다.

여성친화도시 1호는 전북 익산이다. 익산시는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기보다 지정을 받아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인구 31만 명인 익산시 발전을 위해 공장 부지를 확보해 공장을 유치하려고 했지만 생활불편과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외면돼 사업추진이 난항에 부딪혔다. 익산시장은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지 않으면 도시의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해 2008년에 익산을 여성친화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익산 시정의 핵심을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두고 여성친화부서를 신설했다. 여성친화과에 근무하면 승진이 잘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의욕적인 직원이라면 일하고 싶어 하는 인기부서가 됐다.

기초자치단체가 자발적으로 여성친화도시를 조성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중앙정부에서 지원을 받고, 주무부처에서 인증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작고 힘없는 지방자치단체가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여성가족부로부터 연구용역 발주를 얻어냈다. 여성친화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고 싶다며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관련 교육과정도 만들게 됐다. 익산시장을 비롯한 간부공무원 전원이 먼저 교육을 받았고, 유관기관 직원까지 차례로 이를 이수했다. 익산시 상수관리과 직원은 "업무도 바쁜데 상수관리와 여성친화도시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면서 교육받으러 왔다. 그런데 막상 교육을 받다보니 여성이 수돗물을 더 많이 사용하고 수질에 예민하다는 점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교육에 참여했다가 쉬는 시간에 익산시 직원끼리 나누는 얘기를 우연히 들은 것이니 듣는 사람을 의식해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2008년부터 자발적으로 여성친화도시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2009년 3월에 익산시는 여성가족부가 인증한 '여성친화도시 1호'가 됐다. 여성친화도시 1호를 브랜드화하고 '여성과 아동이 안전한 도시'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행정안전부와 농촌진흥청 등의 굵직한 국비사업을 확보하는 성과가 따랐다. 익산이 여성친화도시를 브랜드화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전남 여수시가 발 빠르게 여성친화도시를 신청해 2호 도시로 지정받았다. 그 뒤를 이어 2010년에 서울 강남구, 경기 수원시와 시흥시를 비롯해 전국 10개 기초자치단체가 여성친화도시가 됐다. 2011년에 18개 도시가 더 지정돼 현재 전국 30개 여성친화도시가 있다. 동남권에서는 2011년에 경남 김해시, 양산시, 창원시, 그리고 부산 사상구가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됐다.

후발 여성친화도시들이 익산에서 배울 점은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몇 가지 사업 아이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은 집중과 열정, 그리고 스스로 창조해낸 도시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일 것이다. 더불어 생각해볼 점은 여성친화도시, 가족친화마을뿐 아니라 노인친화도시, 어린이친화도시, 청소년친화도시, 서민친화도시 등의 특화된 친화도시 사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부산의 기초자치단체 중에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곳, 출산율이 낮은 곳, 자녀교육을 위해 이사 가는 사람이 많은 곳, 대형 할인점과 기업형 슈퍼마켓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곳 등에서는 익산시처럼 특화된 친화도시 전략을 중앙정부보다 한 발 앞서 모색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