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김정일 사망 당시 조문 방북을 막았던 정부가 세계평화연합이라는 통일교 쪽 고위 인사들의 육로 방북을 비밀리에 허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민간단체 소속 세 명의 조문 사실은 대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조문 방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정부의 일관성과 형평성, 신뢰성에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의 변명이 치졸하고 옹색하기 짝이 없다. 이들이 한국계이지만 미국 국적을 지니고 있는데다, 편의상 남쪽을 통해 북으로 가고 싶다고 해 협조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가 조문 방북 자체를 틀어막았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김정일과의 인연이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 등의 요청마저 거절할 정도로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었다. 다만 남북 경색을 풀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에게만 육로를 통해 조문할 수 있도록 해줬던 것인데, 이들보다 이틀이나 앞서 민간인들이 경의선 쪽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고 하니 기가 찰 일이다.

정부에 한 번 물어 보자. 앞으로도 한국계 미국인들이라면 계속 육로 방북을 허용할 것인가. 겉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해놓고 내부적으로는 쉬쉬하면서 이들의 편의를 봐 준 까닭이 무엇인가. 중국을 통해 가도록 권유하면 될 일을 굳이 욕 먹을 짓을 한 속내가 자못 궁금하다. 그리고 비밀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는가.

무엇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까 두렵다. 속과 겉이 다른 정부, 밀어붙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나라,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 주지는 않을까. 국가 신뢰도는 경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정부는 꼼수를 부린 이번 사건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면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라. 이들의 방북을 공개해야 할 정도의 사안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는 허술한 변명 따위로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