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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왜관, 그 지독한 이야기 /박창희

'왜(倭) 콤플렉스'에 왜관·부산요 역사 찬밥 신세 못 벗어나…생각 바꿔 활용해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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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1-04 19:43:0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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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군(將軍)들과 역대 대마도주들은 조선의 찻사발을 좋아했다. 그 최고는 조선에서, 조선의 태토(흙)로, 조선인이 만들어 구운 것이었다. 일본 측은 왜관의 부산요(釜山窯)에 주문 제작 형태로 수요를 채웠다. 태토 조달 등으로 민폐가 컸다. 일본 측은 묘한 자존심을 세우려 했고, 조선은 전전긍긍했다.

1700년 초 왜관에서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마쓰무라 야헤이타(松村彌平太)라는 일본 도공이 조선에 태토를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29년(1703년) 9월 7일 자에 경위가 나온다.

'번조(燔造·왜관의 부산요)의 요청 문서에 재신(宰臣·정삼품 이상의 벼슬을 통틀어 이르던 말)이란 글자가 거만하다 하여 판사(역관)가 접수하지 않았다. 마쓰무라가 그 이유를 캐물었고, 관수(왜관의 우두머리)가 항의했다. 마쓰무라가 말한다. "새 대마도주가 장군에게 찻사발 헌상을 거절하면 도주의 목이 위태롭고, 나 역시 도주에게 문책되어 목이 달아난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 동래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비변사를 거쳐 국왕에게 보고했다. 그 결과 동래부사는 견책, 훈도와 별차(일종의 역관)는 태형으로 다스렸다.' 

마쓰무라가 자살한 곳은 영도의 선창가로 전해진다. 죽기 전 그는 조선식 큰 나무밥통 뚜껑에 쿄카(狂歌) 한 수를 써 놓았다. '昨日まで命をつなぐ飯櫃も 今日かんと鳴る入相の鐘'(어제까지 생명을 이어주던 밥통도 오늘은 꽝 하고 우는 석양의 종소리로다). 동료들이 이 밥통으로 관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마쓰무라는 처음에 부산의 복병산에 묻혔다가 1907년 아미동 부산공동묘지로 옮겨졌다. 이때 대마도에 있던 후손이 묘를 이장해가면서 도기로 된 묘지석을 세웠다. 비문에는 '산앵풍관거사(山櫻嵐關居士)'라고 적었다. '산 앵두나무 같은 기운을 품은 은둔의 선비'란 뜻이다.

여기까지는 1930년대에 아사가와 노리타카(淺川伯敎)가 쓴 '부산요·대주요'라는 책에 소개된 내용 일부다. 부산요는 1639년 두모포왜관에 처음 설치됐고, 1678년 용두산 일대의 초량왜관으로 옮겨져 운영되다 1716년께 중단된 가마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최차호 회장은 최근 이 책을 번역하면서 무릎을 쳤다고 한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잠자고 있었다니! 이 책 속에는 부산 도자기 역사를 다시 써야할 내용도 들어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그러는지, 부산은 이런 데 큰 관심이 없다. 아직도 왜관 이야기는 찬밥 신세다. 무조건 '왜(倭)'자가 싫다는 사람도 있다. '왜(倭) 콤플렉스'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조선통신사를 챙기면서 왜관을 몰라라 하는 건 균형감 상실이다. 왜관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대마도 역사까지 부산사로 끌어들여야 한다.

우리의 미온적 태도와 달리, 일본 측은 왜관을 정교하게 요리하고 있다. 다시로 가즈이(田代和生)의 '왜관'(논형)은 이 분야의 명저다. 재일 한국인 3세인 부학주(夫學柱·38) 박사는 오랜 왜관 연구 성과로 지난해 10월부터 대마도 이즈하라 민속자료관에서 초량왜관 복원 미니어처 전시회를 갖고 있다. 부산시에도 전시 제안을 했으나 돌아온 답은 "글쎄요" 였단다.

올해 임진년 흑룡의 해는 바다 건너 일본을 다시금 응시하게 한다. 420년 전 그해, 왜적은 강토를 짓밟았고, 100여년 전엔 이 땅을 강점했다. 지금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이기고 있는가. 어리보기가 따로 있을까. 실속도 챙기지 못하면서 용꿈만 꾸는 게 어리보기다. 부산의 역사이자 한일 합작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왜관과 부산요부터 다시 봐야 할 때다.

용두산(龍頭山)도 다시 보자. 원래 송현산(松現山)·초량소산(草梁小山)이라 불린 곳에 왜 용머리가 붙었던가. 일제의 대륙침략 풍수가 그리 만들었다고 한다. 용두산엔 아직도 일제, 그들의 용이 거하는 셈이다.

이제 우리의 용을 부를 차례다. 올 봄엔 용두산 부산타워가 등대로 재탄생한다. 이 등대가 억눌린 역사를 펴는 짱짱한 희망이었으면 한다.

부국장·기획탐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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