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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이데올로기와 경제현실 /유일선

시장에 대한 과도한 믿음 위기 불러와…이데올로기 함정 벗어나 해법 모색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1-01 19:18:1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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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미국 하버드 대학,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가르치는 경제학 수업 시간에 학생 수십 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강의실을 빠져 나갔다. 그들은 이 수업이 지나치게 시장주의적인 경제학에 편향되어 있고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영속시키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한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맨큐,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이며 부시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의 수업이 거부당했다는 것은, 주류 경제학이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금융위기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나 막상 이 위기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는 미국인의 불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시장의 위대성은 오랫동안 여러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멀리는, 시장은 사적 이익을 의도하지도 않은 사회공익으로 전환시키는 기적의 메커니즘이라 표현한 아담 스미스부터, 가까이는 무질서해 보이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가 최고의 컴퓨터를 동원한 계획경제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하이에크까지.

1970년대에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그 스태그플레이션을 케인즈 경제학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주장과 함께 다시 시장주의가 득세하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이 시장근본주의가 미국의 재무부와 IMF, 세계은행 등의 국제경제기구를 움직이면서 지금까지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이념으로 남아있다. 그들은 '효율적 시장가설'을 통해 시장은 미래에 대한 모든 정보와 예측을 정확히 반영하며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원을 배분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금융부문에까지 시장에 대한 확신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지기능은 불완전하므로 현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미래 전망에 따라 현실 자체가 변화한다. 그리고 바뀐 새로운 현실은 다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변화시킨다. 즉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이 시장에 작동하게 된다. 이런 현실과 기대(미래 전망) 사이의 쌍방향성 상호작용이 경제의 호황-불황주기를 가져온다.

이번 국제금융위기도 비슷한 경우이다. 상당기간동안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금융리스크가 줄어들었다. 그 결과 미래 기대가 과도한 낙관으로 변하고, 모험심을 자극받은 은행들이 무리한 행동에 나서게 되었다. 즉 자산 유동화라는 이름으로 대출을 증권화하고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였다. 소득 불균형이 심해져 저소득층과 주택보유자들의 신용이 떨어지는데도 대출 확대를 멈추지 않았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파생상품과 결합하는 등 위험성을 키우면서 미래의 위기를 과소평가했다. 그 거품의 붕괴가 금융위기다.

문제는 그 해결 과정이다. 금융위기 발생 직후, 부시정권의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그 해결책을 시장의 자율에서 구했다. 금융시장이 이 모든 문제의 효율적인 해결책을 저절로 만들어 낼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금융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정부개입만이 전체 시스템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끝내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자신의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에게 맨큐는 "경제학에 이데올로기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시장이 완벽하다는 경직된 믿음으로 위기를 키우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을 보면 그 주장은 억지스럽다. 수많은 실패와 오류, 반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을 신봉하는 시장주의자에게 경제학은 분명 이데올로기이다.

부자 증세를 시장과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정도로 여기던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한나라당 다수가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시장은 일반적으로 옳지만 때때로 잘못될 수 있다. 그 잘못을 시장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그대로 방치할 경우 위기를 부르게 된다. 새해에는 이데올로기 함정에서 벗어나 국내외 경제위기의 해법이 새롭게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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