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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어른과 원칙이 그리운 시대 /이영식

원칙과 소신 지키며 쓴소리 할 줄 아는 어른의 모습 사라진 비겁한 시대 서글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1-27 20:05:1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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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 없고 원칙도 없는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주위의 눈치부터 살피는 것이 상책처럼 돼버린 모양이다. 자신의 가치와 다른데도 판단을 유보하거나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신중함으로 존중되는 비겁한 시대가 도래한 모양이다. 예전 우리 어른들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다른 가치와의 충돌도 불사하는 진실성이 살아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서로 다른 계층과 이해집단 간의 충돌이 첨예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갈등이 극에 달하기 전 미리 서로의 눈치를 보아가며 미봉책 구하기에 급급하다. 원칙을 왜곡하고 포기하면서 적극적인 자기주장의 기회를 피해가려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투박한 주장이 사라진 비겁한 시대가 서글프다.

엊그제 한미 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과정에서 민노당 김선동 의원은 전대미문의 '최루탄 테러'를 감행했지만, 비준 반대세력을 의식한 탓인지 이틀이 지나도록 사법적 조치나 의원징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흘이 지나 겨우 보수단체의 고발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다는 검찰의 발표가 있었을 뿐이다. 한나라당의 고발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민주당의 유감 표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역풍이 불까 두려워 입을 닫은 한나라당이나, 최루탄 투척으로 강행처리의 부적절성이 희석되는 불만이 있었을 민주당이라도 국회법의 존중과 폭력에 대한 유감은 표명해야 했다.

지난 10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사태가 노사합의로 일단락되면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전개해 왔던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정투위 박성호 대표 등 4명이 무사히 땅으로 내려왔다. 11개월의 투쟁과정에서 가슴 아픈 희생도 있었지만, 합의를 통해 사태가 종료된 것이 기쁘고, 그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다. 그러나 사측의 형사고발은 취하되었다 하더라도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기에 현행법상 환영의 화환 대신 우선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 되어야 했다. 법 집행을 우선하고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경찰이 병원으로 호송하면 된다. 그러나 여론의 자극을 우려했던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이재오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영장청구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희망버스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반대파의 역풍을 우려해 자신들의 주장을 굴절시킨 제스처에 불과하다.

국가와 정당의 중대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데도 신중이란 포장으로 노코멘트를 일관해 왔던 박근혜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대선주자로 나서기까지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몸을 사리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라 판단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좀처럼 자기주장을 개진하지 않는 그는 불의를 보면서도 화조차 내지 못하는 요즘 '어른 부재'의 전형적 모델이 되고 있다. 한미 FTA를 둘러싸고 지난 정권부터 이번 정권에 이르기까지 여야의 위치가 바뀜에 따라 양쪽 모두의 주장이 정신없이 뒤바뀌고 있음은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어디에 무슨 연구와 분석이 있었고, 어디에 자신들의 원칙과 주장이 있었던 것일까. "무지했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여야 모두의 변절을 이해해 줄 국민은 없다. 원칙도 소신도 없는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는 게 서글프다.

매 맞는 교사의 뉴스가 줄을 잇는다. '어른'이 있었던 시대에는 기절초풍할 일이었겠지만, 어느새 크게 분노하는 목소리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소비자중심교육' 운운하던 사람들 때문에 선생은 '단순생산자'가 되었고, 소비자와 생산자의 일대일 대응관계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성립하게 되었다. 학생과 교사의 인권조례안이 동시에 입법동의됐다는 것은 어른 아이의 구별이 없는 어른부재사회 현상의 하나다. 같은 인권으로 보장해 준다니까 학생은 교사를 맞설 상대로 인식하게 되었지만, 학생과 교사는 상대가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스승과 제자다. 무엇을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지, 그 원칙을 바탕으로 엄하게 꾸짖는 어른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원칙도 없고 어른도 없는 우리 시대가 서글프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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