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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유선형 시대에 각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 /강영조

스피드에 소멸된 땅의 향기와 여유, 느긋하게 걸으며 오감을 자극하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0-19 21:20:57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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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 1시간 30분, 국산 고속철, 시속 430㎞찍었다." 지난주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그 기사는 한국철도연구원 실험동에서 실시한 차세대 고속열차 HEMU-400X의 동력 대차 주행 실험이 성공했다면서 부산과 서울을 1시간30분에 주파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사에서 내 눈을 끈 것은 고속 열차의 모델 이미지였다. 열차 운전석을 약간 비스듬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고속 열차의 선두 부분을 그린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스피드감이 느껴졌다. 1900년대 초에 발명한 유선형이라는 형태다.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유선형이라는 용어는 1905년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워낙은 물리학의 용어였다. 선박 비행기 자동차 등 이동하는 물체의 속도에 장해물로서 공기저항, 마찰저항의 존재를 밝히고 이 저항을 최소화하도록 선체나 동체의 형상을 설계할 것을 제안한 과학자의 논문에서 유선형의 존재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전까지는 공업 제품의 디자이너가 이른바 감으로 공기의 저항을 덜 받는 자동차나 선박 등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물리학자의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는 유체역학이 뒷받침하는 유선형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유선형의 디자인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11년 9월이었다. 미국의 대중 과학 잡지 '포퓰러 메카닉스'에 실린 '자동차에 유선형 보디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였다. 그 기사는 최근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 그레고와르가 제작한 자동차의 차체를 유선형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최초라고 한다. 그 자동차는 비행선을 모델로 하여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데 주안점이 두어진 것이었다. 자동자의 전면은 총알처럼 뾰족하고 후미는 마치 계란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이었다. 유선형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다.

고속 열차의 이미지를 꼼꼼히 들여다보니 1900년대 초에 발명한 유선형을 그대로 반복, 인용하고 있었다. 먼저 앞부분을 보자. 마치 돌고래의 주둥이처럼 뾰족하고 미끈한 모습이다. 이러한 형상은 1915년 발표된 이탈리아의 자동차에서 볼 수 있다. 밀라노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 자동차는 차체가 어뢰를 닮은 것이었다. 포탄의 뾰족한 선단 부분은 한눈에 보기에도 스피드감을 느낄 수 있는 형상이었다. 돌고래의 주둥이를 닮은 모습을 한 열차는 1934년 러시아의 모노레일에서 볼 수 있다.

차창은 이음매가 없이 차체와 하나로 되어 있다. 차창의 형태는 사각형이지만 승객이 객차에 오르내리는 승강문의 창은 타원형이다. 이 타원형 차창은 비행기나 선박의 창과 유사하다. 밀라노의 어뢰형 자동차에서도 볼 수 있던 창문 형태다. 유선형 디자인의 모델을 비행선에서 찾았기 때문인데, 21세기의 고속철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차체는 얇게 펴서, 형틀에 넣어 부풀린 것처럼 풍요로운 곡선을 하고 있다. 그 곡선은 물 흐르듯 매끄럽게 후방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곡선 위를 주사하는 시선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단숨에 후방의 객실로 흘러가고 있다. 속도가 시각화되어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시속 400㎞로 달리는 고속열차를 얻는 대신 잃어버리는 것도 역시 많다. 스피드 시대에는 가까운 것, 발 아래가 보이지 않게 된다. 고속의 차창에서는 눈앞의 풍경이 사라진다. 땅의 향기와 소리, 그리고 맛, 삶을 지탱해주는 장소가 속도의 저 너머로 소실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유선형의 시대에 각을 세우고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걷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신체로 느리게, 천천히, 차근차근 길을 걸어서 이동하는 '걷기'는 잃어버린 풍경, 오감을 자극하는 삶의 장소를 되찾아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하는 실재감을 획득하게 된다. 최근 갈맷길 축제, 생명사랑 밤길 걷기 등 걷기 행사가 성황인 것은 유선형의 시대에 각을 세우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부산에도 무척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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