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한 SOFA 고치는 일이야말로 환경주권 되찾는 길

미군기지 오염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가 저질러 놓은 환경오염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1992년 폐쇄된 필리핀의 수빅해군기지와 클락공군기지의 경우 그들이 떠난 뒤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필리핀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미군이 떠난 기지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오염된 우물물과 중금속 토양에 노출된 채 질병세례를 받아야 했다. 신생아에게서 백혈병과 뇌성마비 등이 나타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각종 암에 시달렸다. 집계된 피해자만 해도 2500여 명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 칠곡의 캠프캐럴에 고엽제 드럼통을 묻었다는 전직 미군의 증언이 나와 조사 중에 있다. 그뿐 아니다. 전국에 산재한 미군부대는 환경오염과 환경파괴의 불온한 소문을 끊임없이 생산해냈다. 캠프캐럴 외에도 몇몇 기지에 맹독성 화학물질이 묻혔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미군기지 반환 과정에서 그동안의 풍문이 속속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부산지역도 예외일 수 없었다. 최근 국감에서 이미경 의원이 확인한 '2006년 하야리아 환경오염 조사결과'에 따르면 하야리아 부지가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기지 내부의 지하수에서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721.8㎎/ℓ에 달해 정화기준치(1.5㎎/ℓ)를 무려 480배나 초과했다. 발암물질로 잘 알려진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과 벤젠은 각각 기준치의 4.5배, 2.7배에 이른다. 페놀도 기준치의 8.4배까지 검출됐다. 토양의 오염도 심각해 TPH가 기준치의 50배를 넘어선 2만5142㎎/㎏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점에서는 카드뮴과 비소, 납이 '우려'할 수준으로 드러났다. 총조사지점에 대한 오염지점 비율이 29.6%에 달했고, 부지 전역에 걸쳐 유류 오염도 확인됐다.

문제는 오염된 하야리아 부지를 아무런 치유과정 없이 그대로 되돌려 받았다는 데 있다. 이미 수년 전에 심각한 조사결과가 나왔는데도 쉬쉬하면서 반환협상 절차를 진행했다. 정부는 올해 1월 14일 기지반환을 완료하면서 "오염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며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마디로 부산시민과 국민을 기만한 행위다. 결국 하야리아의 오염은 우리가 전적으로 정화하고 치유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환경오염의 정화·치유 원칙은 '오염자 부담'이다. 오염을 일으킨 자가 치유하고 정화하는 책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 원칙은 국가와 사안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닌, 불변의 법칙이 돼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협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이러한 오염자 부담원칙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원칙이다. 그런데 유독 미군의 환경오염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불공평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야리아 문제는 협상 당국자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았던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최근 밝혀진 위키리크스 문서에 따르면 이 정부 들어 재개한 하야리아 반환협상에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2008년 5월 기지반환 협상의 우리 측 담당자는 공식적 접촉에 앞서 환경부의 요구사항을 10개에서 3, 4개로 줄였다면서 대폭적 양보 방침을 사전에 시사했다. 또 반환기지 복원기준으로 국내법 기준 적용을 손쉽게 포기하고 얼토당토 않은 미국 측 치유기준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미군이 반환했거나 장차 반환할 미군기지는 59개에 달하며, 이들 기지의 오염정화 비용도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염정화 비용을 우리 측이 부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미군의 잇단 성범죄로 다시금 SOFA 개정 여론이 불붙고 있다. 차제에 형사문제뿐만 아니라 환경관련 조항도 개선돼야 한다. 독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과 별도의 보충협정을 통해 미군기지의 환경조사나 정화기준, 비용책임 등을 국내법의 적용을 받게 했다. 반환되는 미군기지가 굴종의 기억으로 남지 않게 하려면 환경오염 조사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실시하고, 하루빨리 실효적 '오염자 부담'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망가진 우리의 환경주권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