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색을 볼 수 있는 것은 빛의 힘이다. 물체가 반사하는 빛의 파장을 눈이 감지한다. 사람의 눈은 수많은 전자기파 가운데 3가지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그게 빨강 초록 파랑, 즉 빛의 삼원색이다. 이걸 모두 섞으면 흰색이 된다. 반면 여러 색의 물감을 섞으면 점점 탁해져 나중엔 검정색이 된다. 빛은 섞일수록 밝아지지만 색은 섞일수록 명도(明度)가 떨어지기 때문. 빛과 색의 차이다.

'화이트아웃(white out)'은 눈이 많이 내려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백시(白視) 현상을 말한다. 이런 상태에선 방향과 거리감을 잃게 된다. 한마디로 시야상실(視野喪失)이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남극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럴 때 비행기 조종사들이 물체를 구분하지 못해 빙벽에 부딪히거나 이동 중인 탐사대원들이 방향을 잃고 조난당하기도 한다. 이 현상은 동물에게도 나타난다고. 새들이 빙벽이나 눈에 부딪히는 것도 이런 이유.

빛이 없는 암흑 상태가 '블랙아웃(black out)'이다. 연극 공연 때 막을 내리지 않고 조명을 꺼 장면을 바꾸는 암전(暗轉)도 블랙아웃이라 한다. 서서히 어둡게 하는 페이드 아웃(fade out)과 순간적으로 조명을 끄는 컷 아웃(cut out)이 있다. 의학 용어로 블랙아웃은 '알콜 유도성 기억 장애'를 뜻한다. 술 마실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필름 끊김' 현상이다. 뇌가 일시적으로 암흑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일 듯. 술 마시는 속도가 빠르거나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고.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를 초래한 정부와 한국전력의 얼빠진 모습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만에 하나 사고 당일 예비전력까지 바닥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기를 쓰는 전국의 모든 설비와 시설이 동시에 정전돼 대한민국이 암흑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터. 예비전력이 '제로'가 되는 순간 모든 전력이 한꺼번에 사라지기 때문.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선 길을 잃게 마련. 하물며 늘 깨어 있어야 정부가 불이 꺼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천하태평이었으니 국민이 불안할 수밖에.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정부야말로 블랙아웃 상태에 빠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