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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일관계에서 미국을 다시 생각한다 /이만열

美, 국제수로기구에 일본해 단독표기 밝혀 한일 갈등관계 심화, 역사 반추 되짚어봐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8-31 21:00:0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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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최근 국제수로기구(IHO)에 제출한 서한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공식의견을 밝혔다는 것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입장을 변호해 오던 한국 정부가 난처하게 되었다.

이 발표가 사실이라면, 미국이 일본을 두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고, 남달리 한·미 밀월을 과시해왔던 MB정권에 그 책임의 일단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또한 분쟁이나 경합이 있는 해역에 양측이 주장하는 이름을 병기하도록 하려는 국제사회의 컨센서스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5년마다 열렸던 2002년, 2007년 국제수로기구 총회는 남·북한의 동해·일본해 병기 요구와 일본의 일본해 단독표기 요구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제수로기구는 다음 총회를 앞두고 2009년 6월부터 2년 기한의 전문가 실무그룹을 구성해 보고서를 내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의 요구와는 달리 미국과 영국의 의견이 발표되자 '일본해' 단독 표기로 굳어지는 듯한 추세를 감지할 수 있다. 염려스러운 것은 '일본해' 단독 표기가 확정될 경우, 일본이 이를 앞세워 독도 영유권을 더 강경하게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이 한·일 양국의 갈등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면 빈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은 이를 일과성으로만 처리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어 이에 대처하려는 심층보도는 좀처럼 내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에 대해 보수세력이 침묵하는 것은 더구나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친일, 숭미(崇美)주의자라 해도 미국이 훈수했다고 해서 '동해'가 '일본해'로 되는 것에 승복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한·일관계에서 미국의 개입으로 유쾌하지 못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 가쯔라-태프트 밀약이다. 이는,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로 한반도와 만주의 권익을 일본에 넘겨야 할 무렵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배타적 권익을 누구보다 먼저 승인한 것으로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강제하는 데에 국제적인 탄력을 받게 했다. 이 밀약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러·일전쟁 기간 동안 일본을 성원했던 루즈벨트가 이 밀약을 보증했다는 것은 밀약 내용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 밀약으로 한국이 제3국으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미국이 조선의 안보에 개입한다는 조·미수호조약의 거중조정 조항은 물 건너가 버렸다.

또 하나 독도와 관련,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입장 변화다. 연합국 측이 1946년 1월 29일 발한 연합국최고사령부지령(SCAPIN) 제677호는 일본이 반환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시키면서 "일본은 제주도·거문도·울릉도·'독도'를 포함하여 한국 연안의 모든 작은 섬에 대한 권리 및 권원을 포기한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도 제1차 초안부터 제5차 초안(1949년 11월 2일)까지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측이 당시 일본 정부 고문인 시볼트를 내세워 미 국무부에 맹렬히 로비한 결과, '독도'에 대한 재고가 이뤄져 미국 측 제6차 초안부터 '독도'가 일본영토에 포함되었다. 이를 발견한 영 연방측의 이의제기로 '독도'를 일본 측에 넘기려는 미국 측 의도는 무산되었지만, 그 뒤 한·일 간에 독도 문제에 혼선이 빚어지게 된 데는 이 같은 미국 측 입장 변화가 기연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역사를 보았기 때문일까. 이번 국제수로기구에 공식의견을 전달한 미국의 입장을 예사롭게 보아넘길 수 없다. 이와 관련, 그 동안 한국 전쟁에서 미국의 젊은이 5만4000명 이상이 희생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해 온 자신이 순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침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과 관련, "미국정부는 이 해군기지가 아태지역에서의 미국의 방어체계의 중추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뉴욕타임즈의 기사(지난달 6일 자)를 보면서 미국이 이제 한국의 국제관계는 물론 사회갈등 요인에까지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본다.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존재인가.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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