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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소통의 역설 /오창호

섣부른 사실 신봉땐 폭력적인 글 될 수도, 세상 문제들에 대한 언론의 역할 숙고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7-11 20:37:1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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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경전 '금강경'을 읽다보면, 부처가 수보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을 내 멸도 한다 하였으나, 실로 멸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체 중생을 온전한 열반에 들 수 있도록 멸도한다고 했지만, 나로 인해 멸도를 얻는 중생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멸도를 얻을 중생이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중생은 이미 멸도를 이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구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

오늘이 국제신문에 글을 싣는 마지막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글이니 꽤 오래 된 인연이다. 그간에 썼던 글들을 보니 부끄럽다. 잘난 것도 없는 사람이 독자들에게 뭘 가르치려 든 것 같기 때문이다. 뭘 아는 체했기 때문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그래도 변명을 한다면, 나의 글은 독자를 향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나의 의견을 세상에 표현한 글이라는 것이다. 나의 생각에 한 조각이라도 독창적인 것이 있다면 그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글 쓰는 행위에는 분명히 폭력적인 요소가 있다. 기본적으로 글을 쓸 때 작자는 자신의 생각을 가상의 독자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설득적인 글쓰기를 매우 권장할 만한 장기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작자의 생각으로 독자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발동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특히 논리적인 글은 독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더욱 폭력적일 수 있다. 세상은 논리적이지 않지만 글은 논리를 지향한다. 결국 글 쓰는 행위의 문제는 논리적이지 않은 세상을 논리적인 글로 담아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논리적이지 않은 세상을 논리적인 글로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글쓰기의 역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이순신 장군이 전장의 병사들에게 했던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은 글쓰기의 역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논리적인 글쓰기에 따르면, "살고자 하는 자는 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해야 맞다. 또 논리적 글쓰기에 따른다면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대중가요의 내용은 결혼과 기쁨을 노래해야 하지만 역으로 현실은 이별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자식은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미운 놈에게는 오히려 떡 하나를 더 주어야 한다.

신문을 만드는 언론인도 글 쓰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글쓰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대중과 가까이 있으며, 대중적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논리적인 글쓰기를 신봉하면 매우 폭력적일 수 있다. 글쓰기의 역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저널리즘의 세계에는 "우리는 사실만을 말한다"는 슬로건이 있다. 언론인들 중에는 이를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이야말로 논리의 전제이다. 의견과 구분되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논리의 근거이다. 사실이 어디에 있는가? 수많은 사실이 있을 뿐이다.

섣부른 사실을 신봉할 때, 기사는 폭력적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 단순한 문제는 없다. 여러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요인들이 서로 얽키고설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모든 문제에는 역사가 있고 구조가 있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에 대해 조야한 사실이나 섣부른 논리를 가지고 해결책을 제시하면 그것은 마녀사냥이 된다. 우리 모두가 관련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 책임에 대한 의심과 혐의를 피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애꿎은 한 사람을 지목하고 그에게 온갖 혐의를 지우는 것이다. 언론에 의해 자행되는 여론재판은 현대판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처가 고백했듯이 언론이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세상에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관념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국제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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