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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체념할 것인가, 분노할 것인가 /배유안

불의의 대상을 냉정히 분석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행동하는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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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1-06-24 20:18:5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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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어느 잡지에 내 작품 중 하나의 창작 계기로 분노를 들면서 작가로 사는 동안 분노에 민감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쓴 적이 있다. 딴에는 진심으로 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득문득 뜨끔함을 느끼면서 참 간 큰 말을 했다 싶다. 공직자의 공약 이행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사회악이 관행과 타성으로 굳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흥분도 없고 액션도 없는 나를 발견하고 무관심과 체념이 습관이 되어가는구나 싶어 화들짝한 게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다 대학에 갔을 때, 신문에 나는 입시 관련 기사를 쓰윽 외면하고, 거기에 끼어 오는 학원광고지를 고대로 쏙쏙 뽑아내 버리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이제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록금이 지금보다 덜 비쌀 때에 아이들이 졸업한 터라 여기저기서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서울은 엄두도 못 내겠다',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유럽 어디처럼 모두 국립 안 되나, 취직도 안 되는 대학…운운하며 건성으로 맞장구치고 넘어갔던 것이다. 그뿐 아니다. 세금 사용에 대한 모 신문사의 기획시리즈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불거지는 금융 부정, 반값 등록금 문제로 나라가 들끓는 것을 보면서, 또 학교나 도서관 등에 강연을 다니면서 전문가가 있어야 할 자리를 기획권, 결정권이 없는 비정규직이나 자원봉사자가 맡고 있는 것을 보고도 '쯧쯧'하며 큰 책상 가진 사람들이 행정의 묘를 살리지 못한다는 희멀건 성토를 누군가와 주고받는 것으로 흘려버리고 있었다. '분노해봤자 바뀌는 게 뭐 있어' 하는 마음이었는지, 내 미약함을 어정쩡하게 감수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별을 게을리 한 나의 무관심이 부패와 비리가 갈수록 더 관행으로 굳어지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면, 수천억대의 국고가 줄줄 새는 데에 구멍 하나 보태준 거라면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얼마나 비겁하며, 내가 활자화시킨 글에 대해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하는 걸까? 따지고 보면 남의 자식 등록금도 내 문제가 아닌 게 아니고, 국고 낭비도 내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비효율적인 행정 관행, 예산 집행도, 고용 문제도 나와 직간접으로 연관되는 나의 문제인 게 분명하다.
내 개인사에서 체념하는 습관은 참으로 경계해야 할 것이었다. 뭔가를 결심하고 지키지 못한 일도 거듭하다 보면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되고, 실패하는 나를 보며 '내가 그렇지 뭐' 하다 보면 실패도 습관이 되는 걸 자주 경험했다. 횡령, 부정, 권력 남용도 보다 보면 습관이 되어 그냥저냥 볼 만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내 손에 쥐어주면 휘두를지도 모를 일이다. 무섭다. 어쩌면 20~30년 전 불의에 분개하며 화염병을 만들었던 20대가, 가장 민감한 금기 중의 하나인 교육제도의 모순을 질타하는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에 열광했던 청춘들이 이제 한국사회의 주역이 된 지금, 사회악이 더욱 극심해지고 능글맞고 뻔뻔해진 것은 분노 대신 체념의 습관, 타성화, 나아가 적극 동참이라는 현실 적응의 결과는 아닐까? 지난 시대의 한 단면-결코 현재와 무관할 수 없는-을 예리한 시선으로 써낸 모 작가의 작품을 읽고 최근의 나의 무딘 분노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치밀한 스토리 속에 깔려 있는 작가의 성숙한 분노를 보았기 때문이다. 마땅한 일이다. 가수만 '나는 가수'가 아니라 교수도 교수여야 하고 교사도 교사여야 하고 작가도 작가여야 하니까. 무엇보다 사람이어야 하니까.

'성냄'은 어리석은 이의 행동이고 '화'는 잘 다스려 사그라뜨려야 할 무엇이지만 '분노'는 우리가 늘 깨어서 불을 지피고 있어야 할 무엇이다. 나는 어쩌자고 분노하는 대신 성을 내며 깨어 있다고 착각했을까? 최근 유럽의 모 인권, 환경 운동가의 '분노하라'가 화제다. 그는 분노란 불의의 대상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며 '분노하라, 그러면 바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늘 큰 책상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도 분노하자. 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보며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라고 표현했던 옛 시인의 자기 채찍질이 생각난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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