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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그들은 아직도 선진국이었다 /이영식

유럽 각국 박물관, 주변 자연환경 조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6-15 19:57:4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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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객에 대한 배려, 문화의 힘 절로 느껴

지난 4월말 인제대 박물관대학 수강생들과 서유럽 뮤지엄 기행으로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를 다녀왔다. 해외여행의 기회가 넘쳐나고, 유럽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요즈음, 새삼스럽게 무슨 유럽 견문록이냐 하겠지만, 일주일 남짓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던 문화적 토대에 대한 부러움과 그렇지 못한 우리 현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몇 자 적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파리 드골공항 근처 호텔에 묵었을 때 일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의 모든 등을 껐는데도 불빛이 남아 있었다. 방을 둘러보니 발밑 비상등이 자동으로 켜진 것이다. 샤워실과 화장실에도 같은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었다. 아무리 깜깜하다 해도 좁은 호텔 방에서 얼마나 다친다고 호들갑일까 하는 생각이 앞섰으나, 화재 같은 비상사태는 물론, 어둠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안전사고에 대한 속 깊은 예방임을 깨닫는 순간, 오히려 한 대 맞은 듯하였다.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의 도시경관에 대해서도, 건물도 낡고 길도 좁아 그다지 쾌적한 환경은 아니다 라며, 서울의 말끔한 빌딩 숲을 떠올려 잠깐 턱을 쳐들기도 했지만, 건물의 정초(定礎)를 보다 또 한 번 얼굴이 뜨거워졌다. 템즈강가의 1860년대, 암스테르담 시내의 1650년대로 각각 기록된 건축 연대들이 너무나 태연히 5층 전후의 석조나 벽돌 건물에 붙어 있었다. 죽창 든 조선의 동학꾼들이 호남의 황토벌을 내달리기 훨씬 전에 저런 건축물들이 들어차 있었고, 지금 같은 도시경관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300년 이상 된 역사와 전통의 향기가 피어나는 거리와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밝고 명랑한 인사를 건넨다. 같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나 외길의 등산로에서조차 인사하기를 꺼리는 우리들과 참 대조적이란 생각이 미치자 왠지 모르게 누구랄 것 없이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오히려 사소한 것이었다. 세 도시의 뮤지엄이란 문화적 토대는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족한 환경이었다. 규모와 관람객에서 세계 1위인 센강가의 루브르(파리), 3위인 트라팔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런던), 고흐 뮤지엄, 렘브란트 미술관(라익스 미술관), 뮤지엄 플레인(암스테르담) 등은 뮤지엄의 내용만큼 주변 환경의 중요성과 조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했다. 우리도 전국 750여 관을 헤아리게 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입장객 300만 돌파로 관람객 세계 9위, 아시아 1위를 기록했지만, 박물관의 규모와 환경, 전시유물의 희소성과 다양성, 관람객의 체류시간과 만족도 등에서 비교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강변이나 숲속, 도시미관지구 같은 주변 환경이 담보되지 못하는 우리의 뮤지엄은 여전히 황량하기 때문이다.

런던만 해도 240여 개의 뮤지엄이 있다는데, 몇몇 야간 개관 때 받는 입장료를 제외하면 모두가 무료다. 암스테르담, 파리와 다른 런던만의 특징이다. 대영박물관이라는 브리티시 뮤지엄이나, 모네·피카소·고갱·모딜리아니 작품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 있고, 뉴밀레니엄 브리지와 베드로성당 등이 있어 템즈 강의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테이트모던(7층 카페)도 무료다. 가장 좋은 것을 무료로 해서 적극적 유인 요소를 만든다는 관광정책의 하나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료 관람의 이집트 미라와 모네 작품이 우리나라를 찾을 때면 비싼 입장료는 물론이고, 런던에서처럼 자유로운 사진 찍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뮤지엄 관람의 환경은 더하다. 뛰는 아이도 없고, 떼로 몰려다니지도 않는다. 단체를 위한 폐쇄회로 마이크와 이어폰은 1시간 대출이 원칙이다. 작품 앞에서 가이드 설명을 듣는 단체 관람객의 벽이 다른 이들의 감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는 아예 그것조차 없다. 수강생 7, 8명을 달고 다니던 나는 수없는 눈총을 받아야 했고, 급기야는 잘못 안 가이드 때문에 사진을 찍다가 머리와 눈 색깔이 다른 여러 명의 관람객에게 제법 큰 목소리의 질책도 받아야 했다. 5시간 내내 쉬지도 못하고 뛰고 달리며 루브르를 헤맨 우리의 여행스케줄도 슬픈 현실이다. 뮤지엄의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에서 가족들이 함께 먹고 즐기며 쇼핑하는 환경 또한 부러웠다. 군사강국이나 경제대국이 아닌 "문화의 힘이 높은 나라"를 원했던 김구 선생님이 다시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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