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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대참사, 그 이후 /박희봉

일본 동정 이전에 내실부터 다져야…가마우지 경제, 질적 변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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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솔직히 말해 보자. 이웃 나라의 고통에 얼마나 아픔을 느끼는지. 일본 대참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온정은 유행병처럼 번졌다. 마치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모든 생물은 이타적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확인되는 건 그리 흔하지 않다. 엘리어스 카네티가 말하는 군중들의 집단적 감염 현상인가.

친절한 행동을 보고 이를 즉각 본받는 군중의 특성을 심리학자들은 앙양이라 하고, 이 앙양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한다. 신생아는 다른 아이의 울음을 따라 하지만 자신의 울음을 녹음한 소리엔 반응하지 않는단다. 쥐, 원숭이 등 동물들은 배가 고파도 먹이를 먹을 때마다 동족들이 고통을 받으면 먹는 걸 기피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일면 수긍도 가지만 어쨌든 한국인들의 선심 행렬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식민지배의 아픈 과거,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역사왜곡과 망언, 독도 침탈. 그리고 한국과 한국인을 깔보는 태도. 과거와 현재의 한일 간 역사는 우리에게 심리적 내상을 심화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세계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우리조차 그 의미를 해독하기 힘든 건 당연지사다.

일본 대지진 이전까지 우리는 지구촌 참화에 관심조차 없었다. 9·11 테러 때도, 쓰촨성 대지진 때도 감정적 공유는 없었다. 동남아 쓰나미 때는 무관심의 정도가 더했을 것이다. 한데 일본이라니…. 매맞을 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히 의아하다. 생생한 화면이 가져다준 충격이나 일본 국민들의 의연한 태도 때문인가. 아니면 아픈 과거를 승화하려는 큰 마음의 발로인가. 그것도 아니면 한국민의 도덕적 우위를 확인하려는 자의식 때문인가. 이유가 어디에 있든 한국사람들이 보여 준 선의는 크게 주목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던가를. 또한 기억해야 한다. 기대는 실망의 뿌리라는 것을. 이번 일이 인류애의 발로라면 그 뒤를 생각지 마라. 선의란 그런 것이다. 베푼다는 생각엔 증오라는 싹이 터 있다. 6·25 전쟁으로, IMF 환란으로 우리가 고통받을 때 그들은 어찌 했는가. 그러니 기대는 아예 접어라.

100년의 준비 끝에 속절없이 당한 일본인들의 무기력감은 재난 이상의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불안감, 어설픈 대처로 사태를 키웠다는 좌절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은 큰 짐으로 남게 됐다. 그렇긴 하되, 일본을 걱정하는 건 기우일 뿐이다. 흥부가 놀부 마누라 속곳 걱정한다고, 그런 쓰잘 데 없는 게 아닌가 한다. 일본은 부자 나라다. 이 정도로 나라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일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대참사, 그 이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또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상당한 변화를 예고한 참사 이후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나라 안팎을 단단히 여미는 것이다. 한 수 위인 일본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물며 우리였다면…. 다음은 우리 차례일지 누가 알겠나. 그런 생각이 끔찍하다면 상상 가능한 모든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재난은 늘 방심을 노린다. 원자력의 원 자도 모르는 교과부 장관이 원전 현장 한번 휙 둘러본다고 점검이 되는 게 아니다. 내진 설계를 진도 6.5에서 7.0으로 올린다 하여 방비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원전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면 재난에 대해 세세히 점검하고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 일본 정부의 끔찍한 대응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예측 가능한 미래,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길이다. 미국과 일본의 과학자들은 머지 않아 태평양 지진대에서 진도 10 이상의 초대규모 지진 발생을 확신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진짜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차제에 일본에 편중된 경제 의존도도 확 바꿔야 한다. 대일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마우지 경제'를 벗지 못하면서 동정이란 턱도 없는 일이다. 당나귀의 재주자랑은 온 산천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첨단 산업국가를 자랑하면서 핵심 부품과 소재는 일본에 의존해 온 게 우리의 따가운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일본이 들썩이면 한국 경제가 덜컹거리고, 일본이 기침하면 몸살을 앓는 행태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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