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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Pray for Japan(일본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배유안

땅은 뒤집혔지만 배려와 사랑의 마음 뒤집지 않은 그들에게 위로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18 21:22:3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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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 지척의 나라 일본에서 일어났다. 도시 몇 개를 순식간에 집어삼킨 지진과 쓰나미의 대참사에 계속되는 여진과 원전 폭발까지, 위기는 더욱 커지고 공항엔 대탈출이 줄을 잇고 있다. 몇 년 전 본 영화 '일본 침몰'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회오리 파도와 거꾸로 땅에 처박힌 거대한 선박, 통째로 물에 떠다니는 집,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사진들은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더욱 재앙에 대한 두려움을 실감하게 한다.

그런데 아수라장일 것 같은 일본의 재난 현장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놀랍게도 존경과 찬사이다. 식료품 가게에 죽 늘어선 줄은 있어도 다툼의 아우성은 없고, 재난 상황에 항상 있음직한 약탈과 혼란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기사, 계획 정전을 예고했다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으로 전력의 여유가 생겨 취소했다는 기사 등과 함께 어느 나라에서는 일본인의 질서의식, 배려와 양보 정신을 두고 '인간 정신의 진화' 라는 글을 올렸다.

며칠 전 'Pray for Japan'이라는 글을 뺨에 쓴 채 전화를 하고 있는 한 일본 여학생의 사진을 보고 울컥했던 마음이 이웃의 재난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면 '정신의 진화'라는 표현을 보고 울컥했던 마음은 공감과 부끄러움이었다. 나 하나에 갇혀 있는 내 생각과 행동 양식에 실망하고 있는 중이었고, 사유의 진화 즉 깨달음은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배려와 사랑의 행동은 각성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는 걸 알아채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능력은 차근차근 몸에 배고 오랜 기간 연습이 되어야 습득되는 능력이어서 그에 대한 인식과 함께 긴 숙성기간을 거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빤한 단어들은 한 개인에게 일생을 두고 진화를 해야 하는 것이고 집단의 경우 역시 대를 넘겨가며 축적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 살짜리 딸아이를 데리고 일본의 한갓진 주택가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었던 적이 있다. 택시가 와서 서자 먼저 서있던 아가씨가 우리를 보고는 아이가 있다며 양보했다. 택시 기사는 내가 내릴 곳보다 조금 못 미친 곳에 택시를 세우더니 내리라고 했다. 조금 더 가자니까 한 바퀴만 더 구르면 요금이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일을 30년이 지나도록 잊지 않고 있다. 그게 이번 지진참사를 통해 누군가로부터 '인간 정신의 진화'로 불리고 있는 행동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대재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질서와 폭동에 가담하는지를 보아온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 자연스레 보여준 일본인들의 절제된 행동은 진화라는 찬사에 걸맞은 것이었다. 그것이 집단의 행동이었기에 더욱 찬사 받을 만했다. 땅은 뒤집혔지만 사람은 뒤집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재난에 대한 경험의 축적으로 남달리 생명과 죽음에 대한 순응적 수용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는 것이 자연재해 앞에서 얼마나 미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를 우리보다 더 많이 깨닫고 있어서 그 와중에도 배려와 양보를 발휘할 만큼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행히 덜 불행할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이웃들의 위로까지 듬뿍 전해지고 있으니.

재앙은 말 그대로 재앙이지만 인간에게서 가장 인간다움을 끌어내기도 한다는 걸 이번의 재앙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목숨을 걸고 원전을 지키러 달려가는 기술자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 대해 복합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도 깊은 위로와 함께 즉각 대대적인 구조대와 구호물품, 지원금을 보내고 있다. 독도, 정신대 문제 등으로 일본과 예리한 각을 세우던 단체들조차 일본에 위로를 보내고 있다. 원한, 미움 등은 이웃의 고통 앞에서 가볍게 뒤로 던져졌다. 그들의 경제력이 우리보다 앞섰다 해도 이 전폭적인 위로가 그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고 행하는 우리들도 꽤 진화했다.

얼마 전에도 자신의 재앙 앞에 지극히 진화된 정신을 보여준 사람을 만났다. 암의 재발로 죽음에 임박한 50대 여인이 아프리카 유아들의 목숨을 구해줄 털모자를 수십 개나 짜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조용히 맞았다는 신문기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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